“우리집 얘기 같다”...'베테랑2' 돌풍 속 관객 이어지는 웰메이드 영화 '장손'
대가족 3대 제사·장례에 근현대사 새겨
'차세대 거장' 주목받는 오정민 감독
"사라지는 세대 장례 치르듯 만들었죠"
“누군가는 따뜻한 가족 영화, 또 누군가는 아리 애스터 감독 작품처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오는 공포영화라더군요.”(오정민)
대구 시골마을에서 두부공장을 하는 가부장적 김씨 집안 3대의 70년 가족사가 관객마다 다른 해석을 불렀다. 올추석 흥행 1위 ‘베테랑2’와 나란히 좌석판매율 30%를 넘긴 유일한 한국영화 ‘장손’(9월 11일 개봉)이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거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연출전공을 한 자칭 ‘이청준 키드’ 오정민(35) 감독이 각본을 겸한 장편 데뷔작이다.
추석 흥행 역주행…"우리집 얘기 같다" 관객 줄이어
신인 데뷔작인 탓에 전국 최다 상영관수가 60여개에 불과했지만, “우리 집 얘기 같다”며 찾는 관객이 잇따랐다. 대가족 제삿날, 가업 존폐를 둘러싼 세대갈등부터 할머니(손숙) 장례식 후 사라진 통장, 재산 분쟁 등 적나라한 소재가 명절 시즌과 맞물려 지난 16일 관객 2만7000명을 넘어섰다.
“사라지는 윗세대에 대한 장례 치르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오 감독을 지난달 서울 종로 신문로 카페에서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창작에 눈뜬 그에겐 “‘장손’에서 이청준 소설 『눈길』이 떠오른다는 관람평이 가장 뜻깊었다”고.
"왜 하필 대구? 자기 것 지키는 TK 정서 잘 맞았죠"
극 중 10명 대가족이 사는 큰 한옥은 경남 합천에서 구했다. 실제 80대 부부가 집안 제사를 모시며 사는 집이었다. 극 중 무대는 대구를 고수했다. “내 정체성이 대구 사람이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주제가 자기 것을 꼬장꼬장 지키는 TK(대구·경북) 지역 정서와 잘 맞았다”는 설명이다.
“두부는 원재료 콩이 만주‧한반도 일대에 주로 나는 아시아적 음식이고, 고된 과정 끝에 소량의 두부를 만들고 남은 재료는 다 버린다는 게 유교 가부장제 속성과 비슷하다”고도 오 감독은 덧붙였다.
"가족은 정답 없는 미스터리…갈등의 시대 완충제 되길"
온 마을을 멀찍이 굽어보는 ‘장손’의 장면들은 마치 1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아름드리 고목의 시선 같기도 하다. “사라지는 것들의 뒷모습과 롱숏을 잘 찍고 싶었다. 세트 촬영, 배우 얼굴 클로즈업에 치중한 한국영화가 많은데, ‘장손’은 관객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과거 우리가 영화에 매혹된 이유를 회복하고자 했다”고 오 감독은 설명했다.
‘장손’을 만들며 거장 감독의 고전도 참고했다.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1985),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1962),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 임권택 영화들이다.
독립·예술영화 20여편 개봉 몰린 이유? 영진위 개봉지원 실책
호평에도 불구하고 ‘장손’은 상영관이 전국 20개 대로 줄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실책으로 가뜩이나 상영관을 잡기 힘든 독립‧예술영화들이 올가을 개봉이 몰리게 된 탓도 크다. 올 11월까지 개봉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인데, 2월에 출품작을 신청받아 심사결과를 6월 중순에야 발표했다. 선정작 20여편이 그때서야 부랴부랴 극장 확보에 나섰다.
영진위 측은 내년부터 시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올해 선정작들의 개봉 형편이 각박해졌다. ‘장손’은 비슷한 시기 웰메이드로 화제가 된 독립영화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 ‘해야 할 일’과 함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장기 상영 캠페인에 돌입했다. 오 감독은 “어떻게 시장을 개선해야 할지 함께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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