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다시 원래 내 자리로”

조민영 2024. 10. 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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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하게 익었네요." "익힘 정도가." 최근 가장 빠르고 넓게 유행한 신조어 혹은 밈(meme)을 꼽는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속 이 대사를 빼놓기 어렵다.

공개 직후부터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 중 가장 많이 시청한 프로그램 1위를 달렸던 '흑백요리사'는 방송을 마무리한 지금도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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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이븐하게 익었네요.” “익힘 정도가….” 최근 가장 빠르고 넓게 유행한 신조어 혹은 밈(meme)을 꼽는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속 이 대사를 빼놓기 어렵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더라도 가정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 함께 식사하는 어떤 시점에, 혹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쇼츠(shorts) 영상에서 누군가가 ‘채소의 익힘 정도’나 맛 감별을 시도하는 걸 한 번쯤은 봤을 가능성이 크다.

공개 직후부터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 중 가장 많이 시청한 프로그램 1위를 달렸던 ‘흑백요리사’는 방송을 마무리한 지금도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연출 뒷이야기, 참여한 셰프와 그 식당을 둘러싼 더 깊은 스토리는 본 방송 못지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정도 ‘대박’은 한두 요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줄 수 있는 긴장감과 반전, 감동과 재미 등 방송적인 요소에 외식업계 왕으로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나 대한민국 유일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심사를 본다는 화제성, 넷플릭스 오리지널다운 화려한 세트, K푸드에 대한 세계적 관심 등 이유는 숱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계속 곱씹게 되는 건 셰프들이 보여준 태도였다. 흑수저, 백수저, 젊은 셰프, 나이 든 셰프를 불문하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공통되게 집요하고 정성스러웠다. 흑수저 트리플 스타는 파 하나를 곱게 채 써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홀렸는데, 그는 ‘파인다이닝’에선 잘게 썬 재료의 ㎜ 단위 크기가 일정한지까지 봐야 한다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제자였다. 집요함이 집착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보인 건 그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경지가 되기까지 쏟아부었을 정성과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 신선한 건 존중이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주인이든, 요리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맡을 급이든, 제자도 배출한 요리 스승이든 ‘계급장’ 떼고 경쟁에 나선 셰프들은 상대가 누구든 온 힘을 다해 요리했고 상대의 요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심사위원 두 사람도 각자 나름의 경지에 올라 있는 셰프들의 음식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맛있게, 정성들여 먹는 모습에선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미국 요리 서바이벌 ‘아이언 셰프’ 우승자였던 백수저 에드워드 리가 흑수저를 상대로 졌는데도 ‘이균’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알리며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그가 보여준 태도 때문이다. 그는 어떤 출연자보다도 겸손했는데, 동시에 누구보다 화려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순수한 열정과 자신감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요리가 뭐라고 이렇게 감동을 주나 했는데, 결국 장인정신이었다. 화려한 듯한 요리사의 길은 사실 거칠고 답답하다. 1위를 차지한 나폴리맛피아 권성준 셰프는 우승 소감에서 “즐기는 것 없이 주방과 집만 왔다갔다 하면서 살다보니 답답해 대회에 나왔다”고 했다. 실제 셰프의 삶은 하루 종일 주방에 갇혀 지내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칠게 표현해 점심 장사를 하려면 늦어도 오전 10시에는 재료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저녁 장사를 마치면 빨라야 밤 9~10시는 돼야 주방을 나올 수 있다. ‘그것밖에 없는 삶’인 셈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건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권 셰프가 마지막으로 남긴 소감은 “앞으로도 요리사답게 집과 주방만 오가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다. 어렵고 힘들지만 내가 서 있는 그 자리를 지키고, 매일 반복되는 일들에 정성을 들인다는 것. 간만에 반가운 장인정신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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