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정동야행

장창일 2024. 10. 1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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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올해 21회를 맞았다.

2003년 서울기독교영화제로 시작한 영화제가 기독교 문화 확산이라는 첫 목적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묻어나는 영화를 통해 각박한 세상에 뭉근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올 영화제는 15일 밤 서울 중구 정동길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개막했다.

스무 해 넘도록 이어온 기독교영화제가 정동에서 열린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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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일 종교부 차장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올해 21회를 맞았다. 2003년 서울기독교영화제로 시작한 영화제가 기독교 문화 확산이라는 첫 목적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묻어나는 영화를 통해 각박한 세상에 뭉근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올 영화제는 15일 밤 서울 중구 정동길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개막했다. 스무 해 넘도록 이어온 기독교영화제가 정동에서 열린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사계절 아름다운 정동의 백미는 가을이다. 그중에서도 ‘야행(夜行)’이 으뜸이다. 정동의 밤 산책은 때때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통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자태를 선보이는 건물들이 그런 느낌을 배가시킨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우리나라에 수많은 선교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동은 19세기 말 낯선 땅에 터를 닦은 선교사들이 선호하던 주거지이자 각국 공사관이 몰려 있던 외교가였다. 조선말 주민과 외국인들이 어울려 살던 국제도시의 면모도 있었다.

선교사들은 복음과 함께 다양한 문물도 소개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던 간행물 중 가장 잘 알려진 ‘코리아 미션필드’(1905~1941)에는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던 이들의 이색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글이 가득 실려 있다.

신문물의 편린은 원고 한켠에 자리잡은 광고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스탠더드오일’이 만든 각종 전열기구를 파는 평양과 신의주, 제물포, 군산, 목포, 부산의 매장이나 정유회사 ‘셸’의 서울 대리점 광고 등이 흥미롭다.

환등기와 영화가 처음 소개된 곳도 다름아닌 정동이었다. 이 동네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있는 구세군교회가 주인공이다. 1908년 12월 5일 구세군 선교사들이 환등기를 활용해 교인들에게 사진이나 필름을 보여줬다. 듣도 보도 못했던 시각 자료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당시 교인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은 대한매일신보에 ‘구세 환등’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을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 구세군은 1911년 12월 23일에 ‘예수의 일생’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면서 또 다른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첫 영화 상영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의 ‘의리적 구토’지만 사실 이보다 8년 앞서 구세군교회에서 영사기가 돈 셈이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영문명에는 ‘러브(Love)’ 대신 ‘아가페(Agape)’를 사용한다. 그리스어인 아가페는 종교적인 사랑을 뜻하는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나 희생을 통해 실현되는 헌신적 사랑을 의미한다.

마침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저니 투 베들레헴(Journey to Bethlehem)’으로 예수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뮤지컬 영화였다. 기독교판 ‘라라랜드’로 불리는 영화는 시종 유쾌했다. 예수 탄생의 전후 상황을 쓴 성경 구절의 행간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웠다.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다 보니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경쾌한 노래들이 고비를 넘기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정동길에서 예수의 탄생을 다룬 뮤지컬 영화를 보면서 113년 전 구세군교회에서 틀었다는 영화를 생각해 봤다. 잠시나마 시공간이 뒤섞이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든 뒤 어김없이 정동야행에 나섰다.

늘 묵직한 주제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택했던 관행을 벗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한 건 우리를 향한 예수의 ‘아가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서가 아닐까. 수년째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은 물론이고 점차 갈등이 고조되는 한반도에 아가페의 사랑이, 주님의 평화가 깃들길 소망해 본다.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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