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소환한 ‘경영권 프리미엄’…“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한국에만 있는 ‘경영권 프리미엄’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에 붙는 일종의 웃돈이다.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쪽은 보통 피인수 기업의 대주주 지분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산다. 시세대로만 팔아야 하는 일반 소액주주는 이런 이중가격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한 영풍의 강성두 사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언급했다. 영풍·MBK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주식 공개매수를 하는데, 분쟁이 끝난 이후 주식이 원상태로 돌아갈 경우 손실이 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강 사장은 “향후 (고려아연의) 주가가 100만원, 120만원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팔면 (손해로 보이는 부분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공개매수에 성공해 경영권만 확보한다면 추후 다시 지분을 매각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쩐의 전쟁’ 초기부터 이 분쟁의 원인을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주식 커뮤니티 등에서 있었다. 고려아연은 영풍 측 장씨 일가가 최대주주이지만, 경영은 최씨 일가의 최윤범 회장이 맡고 있다. 장씨 일가 지분 33%는 최대주주 지분임에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주식인 것이다. 이 때문에 영풍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력이 센 MBK와 손을 잡았고, MBK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추후 매각하면 손해가 아니기 때문에 ‘협공’에 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선진국엔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대주주 지분만 높은 가격에 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선진국은 대주주 주식과 일반주주 주식을 다른 가격에 살 수 없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지분 30% 확보를 시도한다면, 대주주 지분 30% 정도만 살 순 없고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공개매수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개매수가는 6개월 내 매수 최고가격으로 정해 사실상 대주주 지분와 같은 가격으로 일반 주주 지분도 사게 하고 있다. 미국은 관련 제도가 없지만 이사회의 견제와 강력한 민사소송제도 때문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다.
한국의 경영권 프리미엄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의 원인으로도 지목돼왔다.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는 최근 ‘미국도 중국도 다 오르는데, 코스피는 왜 안오르나’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국내 증시 부진의 이유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적했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에 회사 주가를 부양할 유인이 없어 방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가 2020~2021년 발생한 주식양수·양도 방식 M&A 7건을 분석한 결과 경영권 프리미엄의 평균은 32.95%였다. 대주주는 시세보다 30% 넘게 웃돈을 붙여 팔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모펀드 운용사 KCGI는 지난 8월 한양증권 인수를 위해 대주주 지분에만 32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양증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를 4배로 올리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슈카월드는 “내가 지배주주라면 주가를 올릴 필요가 있나. 올리면 세금만 많이 나오지”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M&A시 일반 투자자 보호를 위해 선진국처럼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2022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인수합병하려는 기업의 지분 25% 이상 확보하려고 하는 경우 대주주 지분과 같은 가격으로 잔여 주주를 대상으로 공개매수하도록 하고, 최소 ‘지분 50%+1주’는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1997년 잠깐 도입됐다가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는 우려와 국제통화기금(IMF)의 반대로 이듬해 폐지됐던 과거 증권거래법과 유사한 방식이다. 그러나 21대 국회 만료로 논의가 중단됐다. 22대 국회에선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못한 상태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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