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뒤 첫 글 남겼다 "외할머니가 약과 쥐여주면…"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지난 15일 오후 9시 e메일 구독 형식의 무크지(부정기 간행물) ‘보풀’ 제3호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가 한강(54)의 글이 실렸다.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발표 후 나온 한강의 첫 글이다.
‘깃털’이 제목인 921자 분량 짤막한 글에서 한강은 할머니와 추억을 떠올렸다. 글에 따르면 어린 시절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여주던 할머니는 작가가 이를 베어 물면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새’라는 이번 호 주제에서 한강은 할머니를 이렇게 기억했다. “…늦게 얻은 막내딸의 둘째 아이인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그 깃털 같은 머리칼을 동그랗게 틀어올려 은비녀를 꽂은 사람. 반들반들한 주목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
할머니 임종 당시를 회고한 뒤 이 글은 이렇게 끝난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보풀’은 한강과 이햇빛 음악가, 전명은 사진작가, 최희승 전시기획자가 모인 4인의 동인 ‘보푸라기’가 뉴스레터 형식으로 발행하는 무크지다. 한강은 지난 8월 발행을 시작한 이 무크지에 ‘보풀 사전’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보풀’은 지난 8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푸라기 동인 한강은 소설을 쓴다.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에 이끌려 작은 잡지 ‘보풀’을 상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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