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책꽂이에 'MZ 무당' 한 명 모셔가세요
[권혁년 기자]
[기사 수정 : 10월 17일 오후 4시 16분]
'무당'. 새삼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귀신을 섬겨 굿을 하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주로 여자라고 나온다.
그간 내 인생에 있어 내가 본 무당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첫 무당과의 만남은 어린시절이다. 친구 형이 귀신에 들렸다며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해서 동네에서 굿을 크게 했는데, 8살의 나이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무당과 마주했다. 무당은 당시 울긋불긋한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 방울을 들고 열심히 뛰어다녔던 어렴풋한 기억이다.
▲ 향 (자료사진) |
ⓒ m_malkovich on Unsplash |
1년 전에도 정말 감동적인 무당을 만났다. 영화 '파묘'를 통해서 만난 화림이다. 입에 흑색으로 칠을 하면서 굿을 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서두가 길었다. 화림과 비교할 수 없지만 현실판 MZ 무당인 "무당언니"를 최근에 만났다. 이사구 소설 <직장상사 악령 퇴치부>에서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쓴 작가를 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친한 선배의 딸이 처음으로 쓴 책이다. 그래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작가와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배의 권유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IT회사 기획자로 일하는 작가는 고민이 많았다. 그 당시만 해도 글쓰기는 그저 취미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몸속에 내재돼 있던 글에 대한 갈망을 필자에게 이야기했고 필자는 그것이 방향성에서 나쁘지 않다는 조언을 했다. 이후 작가는 부단한 노력으로 첫 작품을 냈지만, 그의 아버지는 끝내 딸의 작품을 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작가는 '작가의 말' 말미에 소설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맨 마지막에 "누구보다 가장 좋아했을 아빠"라는 말로 글을 끝냈다.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나로서는, 책을 덮고도 이 문장의 잔상이 오래 남아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갑자기 착해진 또라이 직장 상사, 뭔가 이상하다
지난 2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출간된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는 직장 상사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그 이면에 숨겨진 악령을 밝혀내기 위한 퇴마 모험을 다룬 작품이다. 현대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공감하며 해결하는 신세대 무속인과 평범한 디자이너가 주인공으로, 공포와 유머가 어우러진 판타지 코미디 소설이다.
이 책은 단순한 퇴마 이야기를 넘어 직장 생활 속에서의 감정적 갈등과 성장을 다룬다. 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와 불안, 그리고 이를 해소하는 독특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은 직장인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선사할 것이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T 기업의 디자이너 김하용은 직장 상사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상하게 여긴다. 직무유기, 업무 태만 등을 행하던 직장 상사가 개과천선이라도 한 듯이 달라진 것이다. 이를 미심쩍어하던 하용은 직장 상사의 기행을 목격한다.
이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자 악귀의 소행일지 모른다며 하용은 무속인을 소개 받는다. 무속인 유튜버 '무당언니' 명일. 하용과 명일은 함께 직장 상사에게 씌인 악귀를 퇴마에 나선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이야기는, 퇴마를 통해 직장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코믹한 시도를 담고 있다. 작가 이사구는 직장인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공포와 유머로 풀어내 독특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다음은 본문 중 한 대목이다.
악귀와의 공존을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무당언니가 말을 꺼냈다.
"가격이 너무 세다면, 좀 싸게 줄 수 있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게 뭐죠?" "네가 퇴마를 도와주면 돼. 그럼 할인이 들어가서." 무당 언니는 다시 종이에 새로운 금액을 썼다. 이십팔만 구천원. 무려 칠십 퍼센트의 할인율이었다. 이거 완전 거저잖아? "할께요, 퇴마."
이 책은 총 11개의 챕터로 구성이 돼 있는데 이 중 8개는 주인공 김하용의 시선이고 나머지 3개는 관련된 다른 이의 시선이다. 각 시선마다 연결고리를 잘 짜맞춰서 읽는 재미가 배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해 놨다.
이 소설은 직장 생활에 지친 젊은 20~30대 청춘에게 권하고 싶다. 동년배 직장인이 무엇을 어떻게 고민하고 어떤 것을 주제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지 잘 설명해 놨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이직을 꿈꾼다. 그것을 실행하든 하진 않든 간에 이직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고민에 대한 답도 함께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작품은 이사구씨의 첫 소설집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집필을 시작했고 층간 소음에서 이번 작품에 영감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결한 문장과 젊은 여성의 생활시선으로 인해 책은 금방 읽힌다.
더불어, 이 책은 온라인 소셜 플랫폼 브릿G(britg.kr)에 동명의 단편으로 게재된 후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때마침 책을 읽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이다. 올가을엔 먼지 쌓인 책꽂이에 MZ 무당 한 명 모셔 오면 어떨까?
책에는 요즘 시대를 사는 직장인의 고민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책을 일단 집어들면 끝까지 읽게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20~30 직장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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