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3분기 실적 예상치의 절반"…반도체 질주에 '찬물'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노광 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3분기 실적 자료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초 예상을 훨씬 밑도는 부진한 수주 및 매출 전망에 전 세계 반도체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주요 반도체 기업이 모두 ASML의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ASML의 실적 전망은 향후 반도체 업황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한다.
16일(현지시간)에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던 ASML은 전날인 15일 자사 웹사이트에 3분기 실적 보고서를 게시했다. 이후 급히 보고서를 삭제했지만 이미 내용이 대부분 시장에 확산된 뒤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ASML의 3분기 장비 수주액은 26억 유로(약 3조8600억원)로 블룸버그 등 시장예상치 53억9000만 유로(약 8조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년 매출 전망 역시 기존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해당 보고서가 유출된 직후 ASML의 주가는 유럽 증시에서 16.26% 폭락했다. ASML은 “기술적 오류가 있었다”면서 실적 조기 발표 사실을 인정했다. 이날 미국 증시는 물론, 16일 개장한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ASML의 ‘실적 쇼크’ 여파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주가는 대부분 장 초반 하락세를 보였다.
AI로 반도체 랠리 질주하는데...왜?
AI 반도체 붐을 타고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우고 있지만 스마트폰·PC 등 기존 시장의 침체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통제 조치가 이어지면서 중국 시장에 반도체 장비를 팔았던 ASML이 타격을 피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ASML 장비의 수출 제한을 이어가면서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을 통제한다는 계획이다.
인텔·삼성, 지갑 닫았다...‘투자 눈치싸움’
차세대 2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에 필수 장비로 꼽히는 하이 NA 극자외선(EUV) 장비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해오던 인텔은 최근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지며 파운드리 사업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향후 장비 투자도 불투명하다. 삼성전자 역시 파운드리는 물론 본업인 메모리 사업에서도 기술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D램 양산에 있어 공격적으로 EUV 공정을 적용했던 기존 전략을 가다듬고 관련 투자 속도 조절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가 지갑을 닫으면서 향후 ASML의 매출 추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JP모건은 이날 리포트에서 “(첨단 파운드리 분야에서) 인텔·삼성전자가 문제를 겪고 있으며, TSMC는 아직 하이 NA 장비 도입에 관심이 크지 않다”면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업체 그 누구도 먼저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분석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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