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만 문제가 아닙니다
[서부원 기자]
▲ 나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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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용도가 대부분이고, 이따금 결제 등 은행 업무를 보거나 여행 도중 사진을 찍는 게 사실상 전부다. 아이들마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며 비웃지만, 전혀 괘념치 않는다. 그저 나와 같은 '천연기념물'을 위한 저렴하고 단순한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힘들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대신 종이 신문을 두 부나 정기 구독한다. 구독료가 비싸다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단지 아무도 신문을 거들떠보지 않는 현실에서 혹여 신문 발행이 중단되면 어쩌나 걱정될 따름이다. 신문에 밑줄 그어가며 읽는 재미와 행복은 만끽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뿐더러 설명해 봐야 헛수고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을 필사하듯 신문의 사설을 정성스레 베껴 쓰던 때도 있었다. 비록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손 글씨를 통해 가슴과 머리로 전해지는 짜릿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지금도 신문을 완독하지 않고는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찜찜하다. 신문의 알싸하면서도 중후한 잉크 냄새는 차라리 덤이다.
밑줄 그어가며 신문 읽는 걸 아이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라고 조롱한다. 이른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거다. 부피가 커서 휴대가 불편한 데다 다 읽고 나서 처리하기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헛돈'이 든다는 이유를 댄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하나면 뉴스를 검색할 수 있는데 굳이 신문을 사서 읽을 필요가 있느냐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하다. 요즘 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게 귀찮음이다. 오죽하면 '귀차니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겠는가. 불편하고 번거로운 데다 괜한 돈까지 들어가는데, 신문을 하등 구독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하루가 멀다 않고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가 터지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아이들이 뉴스에 무관심한 건 절대 아니다.
세상이 궁금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그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해 주는 '도깨비방망이'다. 하루 동안 밥을 굶을 수는 있어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라면 못할 것 같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끼니를 잊은 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배꼽시계도 멈춘다는 거다.
유튜브에 길들어진 '영상 세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에서 뉴스 등의 정보를 검색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것 같다. SNS에서 구독 신청을 하면, 밤낮으로 쉬지 않는 택배 서비스처럼 알아서 친절하게 전해주는 편리함을 알아버렸다. 대개 스마트폰으로 건네받는 정보는 정확성보다 신속성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확장성을 갖는다.
그 중심에 유튜브가 있다. 아이들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타인과 교류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 소일하는 모든 일상이 그 안에 있다. 스마트폰을 본다는 말은 유튜브를 본다는 뜻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튜브가 TV는 물론, 검색 엔진인 인터넷 포털을 대체한 지도 이미 오래다.
나아가 유튜브를 인공지능과 더불어 '문명의 종말'이라고 단언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 소련의 붕괴로 인한 냉전의 종식을 '역사의 종말'로 규정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을 차용한 표현이다. '역사의 종말'이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면, '문명의 종말'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첨단 과학의 정점이라는 거다.
그들은 알고리즘의 폐해만 극복할 수 있다면, 유튜브는 흠잡을 데 하나 없는 문명의 이기라고 주장한다. 기실 거대 담론부터 시시콜콜한 가십거리까지 유튜브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정보는 없다. 불필요한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정치적 양극화나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등의 부작용 또한 머지않아 자율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기술이 개발될 거라는 핑크빛 전망을 내놓는다.
지금도 유튜브에 로그인 후 개인 설정에서 알고리즘이 작동되지 않도록 차단할 수는 있다. 실제로 적용해 보니, 이전처럼 비슷한 성향의 관련 영상들이 줄지어 게시되지 않는다. 유튜브 자체가 상업적 목적을 지닌 IT 기업의 플랫폼이다 보니, 수익 창출을 위해 알고리즘을 작동시키는 게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
▲ 유튜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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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명색이 고등학생조차 활자로 된 텍스트를 낯설어하고 조금만 길어도 문맥을 파악하지 못한다. 한자어의 뜻을 몰라 헤매고, 사자성어나 관용어에 서툴며, 맞춤법을 잘 모른다는 건 차라리 차후 문제다. 중학교 수준의 쉬운 글도 지문이 길면 문제를 풀다 말고 찍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선지 수능 국어 영역 지문도 눈에 띄게 짧아졌다.
믿기 힘들겠지만, 책 읽기가 벌이다. 정확하게는 책을 깜지 쓰듯 필사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엔 책을 읽고 줄거리를 요약하고 소감을 써오도록 했지만, 이는 하나 마나 한 숙제가 됐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단 1분도 안 걸려 완벽한 독후감을 완성해 낸다. 게다가 무료 버전에서도 가능해 부담도 없다. 이걸 교사가 걸러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책 읽기의 즐거움' 느낄 수 있을까
한때 학교나 공공 도서관 입구에는 '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글귀가 내걸리곤 했다. 기성세대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 말은 요즘 아이들에겐 '형용 모순'이다. 책 읽기는 더 이상 즐거움을 주는 행위가 아닌 거다. 즐거움은커녕 책 읽기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이구동성 '귀찮음'과 '지루함'을 손꼽는다. 한때 대세 운운하던 전자책조차도 흥미 유발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이들에게 근래 읽은 책을 말해보라면, 열에 일곱 여덟은 없다고 하고 나머지 두셋은 축구나 게임 관련 잡지, 아니면 웹툰을 댄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그게 책인가 싶지만, 아이들에겐 물성을 지닌 엄연한 책이거나 전자책이다. 과거 전 세계적으로 판타지 열풍을 몰고 온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도 요약본으로 읽는다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이 와중에 중앙과 지방정부 할 것 없이 흡사 청개구리 같은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독서 교육의 최전선인 학교에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강제하고, 주민 밀착형 독서 교육의 진지로 기능한 마을 도서관에 대한 지원을 끊고 있다. 책 읽기를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손에서 책을 빼앗는 행태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배제를 통한 네거티브 방식이었다면, 현 정부의 정책은 애꿎은 첨단 기술을 끌어들여 반대 여론을 현혹하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활자로 된 텍스트에 흥미가 없으니,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영상을 활용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식이다. 아이들의 책가방에 책 대신 태블릿피시가 들어있는 현실이 마뜩잖은 이유다.
사족.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학교 도서관에도 작가의 책을 찾는 아이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조만간 수능 국어 영역 지문에 단골로 출제될 거라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과거 느닷없이 '불온서적'의 딱지가 붙은 그의 작품들이 세대를 넘어 많이 읽히기를 바라지만, 그보다 아이들이 종이책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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