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진수 (8) 가족 모두에게 시련과 고통 준 미국 유학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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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8월 15일 나는 아내와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유학길에 올랐다.
부득이하게 아내와 아들은 장모님 댁에,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다.
주말이 되면 나는 빨랫감을 가방에 챙겨 들고 대중교통을 몇 차례 갈아타고 2시간에 걸쳐 아내와 가족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가족을 떠나 일주일 치 식량을 준비해 기숙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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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생선가게서 12시간씩 노동
아이는 엄마 기다리다 지치기 일쑤
언어와 금전적 문제도 고충에 한몫
1986년 8월 15일 나는 아내와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삶에 대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 가족은 한 지붕 아래 같이 살 줄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부득이하게 아내와 아들은 장모님 댁에,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다. 주말이 되면 나는 빨랫감을 가방에 챙겨 들고 대중교통을 몇 차례 갈아타고 2시간에 걸쳐 아내와 가족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가족을 떠나 일주일 치 식량을 준비해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런 생활을 1년간 이어갔다.
예상을 벗어난 힘든 미국 생활은 내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럴수록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내와 아들에게 당당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아내는 생선 가게에서 12시간씩 일을 해야 했고 난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유치원을 다니던 어린 아들은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에 빠지기 일쑤였다. 한국어를 거의 사용할 기회가 없다 보니 1년이 지나자 한국어를 대부분 잊기도 했다. 가족 간의 대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 모두에게 시련의 시간이요 고통의 시간이었다.
또 외국어도 하나의 고비였다. 영어로 대학원 강의를 수강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인이 돼 외국어를 접해본 사람들은 그 고충이 얼마나 큰지 능히 짐작할 것이다.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아서 강의를 기록하는 데 치중하다 보면 내용을 놓치기 일쑤였다. 듣기에 집중한다 해도 어차피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어느 쪽이든 난관에 봉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칠판에 기록된 강의 내용을 일일이 노트에 기록하던 시절이었다.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게 어설픈 수준이라 수업이 끝나면 쉽게 연결되지 않는 수업 내용 때문에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는 마치 졸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영화가 끝나도 이야기가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그 연결 작업을 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침에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갔다가 도서관 문을 닫는 새벽 1시가 돼야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다. 미국 유학의 기회를 잡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까지 몸 바쳐 일하던 한국전력에 사표를 제출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미국에서의 꿈이 좌절될 경우를 대비해 일단 2년 동안 휴직하기로 하고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이 같은 우유부단한 결정으로 퇴직금이 훗날 절반으로 삭감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2년 후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당시 월급은 기본급과 수당급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둘 다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퇴직금 규정은 퇴직 시점에서 이전 6개월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잡고 있었다. 휴직했기에 월급을 수령하지 않아 기본급만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받았다.
나는 이미 미국에 있었고 영주권도 없는 상태여서 귀국할 수도 없었다. 회사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절반으로 줄어든 퇴직금을 받았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때 생길 수 있는 위기는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너무 안정을 고려해 소심하게 행동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리=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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