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일그러진 한국 정치의 자화상

2024. 10. 1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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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작가 한강씨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류에 이어 한국문학을 세계만방에 알린 쾌거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며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혁신가’라고 평했다. 한강씨는 수상에 감사하면서도 세상이 전쟁 등으로 시끄러운 마당에 잔치할 때가 아니라고 부친 한승원 작가를 통해 알렸다. 멋있어 보였다. 이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지만 일그러진 한국의 정치는 우리에게 노벨상 수상의 기쁨마저 빛바래게 하고 있다.

「 노벨문학상 의미 바래게 하는 정치
조작 외치며 재판 미루는 야당 대표
소통 외면하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
조화·균형의 우아한 정치는 어디에

국회부터 가 보자.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증인을 몰아붙이고, 대정부 질문에서도 자기주장만 펼친다. 이는 철저한 준비 부족 때문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니 상대의 답변이 두려워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오히려 답변을 막는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대방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것이다. 다년간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본 유호연씨(칸 에듀케이션 그룹 대표)는 최근 기고한 글(‘소셜밸류’ 10월 1일 자)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우아한 정치를 주문하였다. 마치 우아한 자태를 위해 땀나게 물질하며 노력하는 백조처럼 말이다. 어디서나 의견 대립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만, 우리 정치는 설득보다는 억지로 대립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니 사회를 조화와 균형 속에서 이끌어가는 정치는 온데간데없다.

정당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거대 야당의 대표인 이재명 의원은 피의 사실이 여러 건 되면서도 또 자신의 주변 관계자들이 여럿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도 한번 사과는커녕 해명도 한 적이 없다. 모두 다 조작이라고만 한다. 그것은 억지다. 대한민국의 판·검사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 대표의 궁극적 목적은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면 유죄 판결은 안 받아야 한다. 그래서 자꾸 이 이유 저 이유를 대며 재판을 지연시킨다. 나는 감히 대한민국 사법부에 주문한다. 이 대표 사건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하루빨리 유·무죄를 밝혀달라고. 지금 국민은 재판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은 다른 대내외적 불확실성과 함께 사법 불확실성이 경제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검찰과 사법 당국의 판단에 승복해야 한다.

22대 국회의 새로운 인물들한테도 크게 기대할 것은 없어 보인다. 지난 4월 총선이 끝난 직후 민주당의 초선의원들은 매사 ‘기승전-탄핵’을 외치는 당 분위기에 맞추기라도 하듯 대통령 탄핵을 다짐했다. 국회의원들의 첫 목표가 대통령 탄핵이라니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대한민국이 탄핵 공화국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사시미가 굴비보다 먼저 썩는다더니, 나쁜 정치 관행을 너무 일찍 배운 게 아닌가 의심하였다.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당이 하나로 뭉쳐도 어려울 판인데 계파 정치를 시동한다거나 당 내부 사정을 바깥에 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대표는 대통령실과 소통하면서 어려운 민생문제를 해결할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며 야당을 설득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해야 하는데 지금 자기 당과 투쟁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과거 몇몇 정치인들은 윗사람에게 도전하여 주목을 받으면 대권 가도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공한 경우는 별로 없다.

끝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난 2년 반에 걸쳐 일어난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은 직·간접적으로 대한민국의 조타수이자 선장인 대통령 탓인 게 많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사가 편중되었을 뿐 아니라 소통을 게을리했으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나서서 고쳐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대통령 내외가 다소 억울함이 있더라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는 “(야구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나는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우리 사회를 독점에서 공유로, 독주에서 동반으로, 무엇보다 가슴으로 국민들을 껴안으며 ‘과거의 윤석열’과 정면 승부하기를 바란다. 야당과 협치를 하며 연립 정부까지 고려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김건희 여사는 겸허하게 뒤로 물러나 있는 게 좋다. 그래서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는, 설득의 정치가 살아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소프트파워 강국이 되었다.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한강 작가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제 한국 정치도 국가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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