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식의 시시각각] 민주당은 헌재를 왜 멈추려 하나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역사는 전진한다.”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15자 주문을 선고한 직후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낸 입장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파면 2주년’ 때도 기념 논평에서 “촛불혁명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부패한 권력을 몰아낸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상찬했다.
헌법재판소는 항상 그렇진 않았더라도 민주당에 든든한 우군이었다. 헌정사 두 번의 탄핵심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건은 기각하고, 박 전 대통령은 파면했다. 헌법과 법률 위반이란 탄핵 사유와 중대성에서 둘은 다르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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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가 민주주의를 지켰다더니
이젠 후임 선출 미뤄 마비 초래
삼권분립 흔드는 ‘다수의 폭정’
」
헌법재판소 탄생 자체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산물이다. 그해 10월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9차 개헌 헌법에 포함돼 1988년 9월 출범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권은 입법부인 국회의 탄핵소추권과 함께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통제하는 수단이다. 탄핵이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의 가장 강력한 헌법적 무기란 점에서 헌재는 본성부터 야당 친화적이다. 위헌 결정을 통해선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즉각 취소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위헌 정당 해산 결정으로 폭정 및 반민주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최후 방벽 역할을 한다.
그랬던 민주당이 ‘재판관 6명 헌재 마비’ 소동을 일으킨 건 말이 안 된다. 사법부 안팎에서 배경을 두고 ‘방통위 기능 정지 장기화부터 이종석 소장 연임 저지, 대통령 탄핵심판까지 노린 포석’이라는 등 분석이 분분하다. 표면적으론 ‘압도적 다수당’이니 17일 퇴임하는 이종석 헌재소장 등 국회 선출 재판관 3명 중 2명의 후임 추천권을 갖겠다는 고집이지만, 헌법재판관 9명 중 국회 선출 3명은 여야(교섭단체)가 각 1명, 여야 합의 추천 나머지 1명이란 협의 전통을 깨는 것이다. 이에 헌재 스스로 14일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는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을 효력정지하는 초유의 ‘비상조치’를 했다.
남은 재판관 6명만으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심판 등 계류 중인 사건 심리를 계속하고, 법리상 6명 만장일치로 파면·위헌 등의 결정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효력정지 가처분은 말 그대로 임시 처분이다. 임시 처분을 근거로 본안 사건에 대해 헌법적 결정까지 할 경우 자칫 헌재가 출범 36년 만에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결국 헌재 기능 부전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민주당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후임 재판관 추천 논의에 응하는 등 다수당 책무를 다하기는커녕 유체이탈 화법만 고수하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4일 밤 논평을 통해 “헌재 스스로 입법 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한 점, 국감 뒤 헌법재판관 청문회 등 추천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다는 점 등에서 아쉽다”고 헌재에 유감을 표명했다. 같은 당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15일 국감에서 “헌재는 탄핵 결정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 판단하지 않았다. 핵심은 심리를 지속한다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한 번도 이진숙 탄핵심판이 중단되기를 원한 적이 없다”고 했다. 탄핵소추 당사자인 민주당이 신속한 탄핵 결정을 막으면서 방통위 휴업 사태만 연장하겠다는 속내만 보인 셈이다.
민주당이 8월 2일 MBC 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진 임명 강행 등을 사유로 탄핵안을 통과시켜 이 위원장을 직무정지한 지 75일이 됐다. 올해 말까지 탄핵 결정을 하지 못하면 방통위 기능 정지는 150일을 넘기게 된다. 올해 말 시한인 MBC TV·라디오 등 지상파 방송국 146곳의 재승인도 이뤄지지 않아 내년 1월 1일부터 송출이 중단되는 방송 대란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수당이라고 해서 정부 기능을 정지하고 삼권분립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건 ‘다수의 폭정’에 불과하다.
정효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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