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응원하는 마음
묵묵히 영혼 쏟아넣는 편집자
덕분에 글 쓰는 초심 되찾는다
담당 편집자가 퇴사해 출판사를 차렸다. 사무실을 얻으며, 그 공간의 절반 이상은 남편이 운영하는 카페로 쓴다. 인연도 있고, 집에서도 가까워 종종 간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도 거기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편집자의 남편인 카페 사장이 다가와 물었다. “혹시 종이 신문 어디서 파는지 아세요?”
왜 그랬을까. 어쩐지 그 표정이 애절해 보였다. 마치 ‘작가인 당신이 모르면, 이제 더는 종이 신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소’라고 항변하는 듯했다. 그래서 종이 신문 구입처를 알아봤는데, 알아볼수록 2024년의 10월에는 종이 신문을 사느니 차라리 구독 신청하는 게 더 빨리 구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최후의 보루인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에서도 모든 신문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다 누군가 요즘은 양계장에 신문이 넘쳐난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어떤 신문사는 광고를 위해 발행 부수를 줄일 수는 없으니 찍고 남은 신문을 달걀 싸는 데 쓰라며 양계장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여차하면 양계장이라도 가겠다는 신념으로, 그에게 가서 확인차 물어봤다.
“혹시 신문지가 필요하신 거라면 제가 집에 가서 챙겨올 수 있는데요.” 그러자 사장은 수줍게 “보관할 기사가 있어서요”라며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돌아보니 소박한 티 테이블 위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익숙한 책 한 권과 손 글씨가 쓰인 쪽지도 있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 대표가 예전에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편집했습니다.” 그렇다. 그의 아내가 ‘소년이 온다’를 편집한 것이었다. 맙소사. 내 편집자가 이런 훌륭한 작품의 탄생에 기여했다니(참고로 그는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도 편집했다. 내 책은 편집하기 전에 퇴사했다! 아뿔싸).
그 짧은 두 문장에는 깊은 감격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말했다. 아내가 한 일간지로부터 한강 작가에 대한 글을 청탁받아 발표했다고.
그러니 아내의 기고문을 스크랩해서 선물하려는 것이었다. 아내의 글이 중앙 일간지에 실린 게 처음이라며. 이미 한 부를 구했는데, 마포구 일대를 뒤져도 한 부 더 찾는 게 이리도 어려운 줄 몰랐다며…. 그 말에 나는 그만 부끄러워졌다.
돌아보면 내 기사가 실린 첫 신문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 이렇게 연재를 하면서도 보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글밥’을 15년 정도 먹으며 글쓰기를 마감 시한까지 나를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괴물이자, 그럼에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삶의 업보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한때는 글쓰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었으며, 글을 쓸 수 있다면 끼니만 때우며 지내도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편집자의 글을 읽어보니 그녀는 퇴근길에 운전하다 라디오 속보를 듣고 울었다고 했다. 10년 전 자신이 소설을 편집할 때의 마음, 작가가 문장에 혼을 담아내던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 내가 만난 편집자들은 하나같이 내 책을 자신의 책처럼 아꼈다.
어떤 편집자는 작가인 나보다 내 책을 더 아꼈다. 그 마음을 아직도 잘 가늠하지 못하겠다. 조명은 대부분 작가에게 향하는데, 무대 뒤에서 묵묵히 문장을 다듬고, 책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자식이 성공한 것처럼 기뻐하고, 함께 울어주는 그 마음을.
내 삶이 온통 검은빛이었을 때, 무엇보다 아름다운 언어로 낙담한 가슴을 보듬어준 한강 작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영혼을 쏟은 편집자와 바다 건너 먼 세계까지 작품이 닿을 수 있도록 사랑을 쏟아준 독자들에게도 축하를 보낸다.
응원하는 마음도 축하받아야 한다. 그 마음 덕분에 작가는 쓰니까. 그리고 종이 신문을 찾은 카페 사장에게 이 글로 감사를 표한다. 그 응원하는 마음 덕분에 예전에 폐기된 줄 알았던 초심을 조금은 되찾았으니.
최민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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