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공감하는 말 사용법

2024. 10. 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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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실에 들어온 중년의 남자는 처음부터 화를 버럭 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감하는 말 하는 법을 따로 배워 본 적 없고, 연습해 본 적도 없다.

다섯 가지 공감하는 말 사용법을 제안해 본다.

"정말 화가 났겠군요" "많이 속상하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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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조정실에 들어온 중년의 남자는 처음부터 화를 버럭 냈다.

“본인은 나오지도 않고, 변호사만 내보내면 다입니까? 이게 뭐하자는 거야? XX!”

남자가 욕설까지 내뱉자, 건너편에 혼자 앉아 있던 젊은 변호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협상 중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제 그만 진정하시지요” 또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시고요”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신 말이 다 맞는다고 해야 할까. 경험상 둘 다 정답이 아니다. 더 화를 내거나, 자기주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일단 옆에 있던 일행에게 물었다.

“이분이 왜 화가 많이 나셨을까요? 기록을 보니까 피해 금액은 다른 분들에 비해 가장 적으시던데….”

“네, 아마도 우리한테 책임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압박 같은 것 말이지요.”

말을 듣고 보니 남자의 입장이 이해됐다. 사실 화를 낸 남자는 상대방의 작은아버지였다. 큰 투자처가 있다는 조카의 말에 형제들에게 함께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 큰 투자처라는 사람은 전형적인 사기꾼이었고, 수억원에 이르는 온 가족의 돈이 허공에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조카는 자신도 피해자라며 돈을 한 푼도 갚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남자는 자신이 형제들에게 사기꾼을 소개한 데 대해 죄책감이 컸고, 그래서 더 압박을 느껴 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화를 냈던 것이다.

“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화를 내시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조카와 형제들 사이를 중재하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겠습니다.”

“갚을 돈이 하나도 없다는 놈이 변호사 선임할 돈은 어디서 났답니까? 아니, 그보다 일단 나와서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자기는 뒤로 쏙 빠지는 게 말이 됩니까?”

“아이고, 그러게요. 조카가 나와서 혼 좀 나고 사과도 하면 선생님이 면이 설 텐데요. 아마 너무 죄송해서 면목이 없어 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설득해보고 합의점을 찾아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좀 해주십시오. 내가 저한테 잘해준 게 얼만데….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사람이 돼야지요.”

많은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해 달라는 걸 다 한 것도 아닌데 그 마음을 헤아린 것만으로 작은아버지는 금방 태도가 누그러졌다. 이처럼 나는 날카로운 갈등과 대립 상황에서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위기를 넘긴 적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정치적 이슈가 걸린 큰 사회적 갈등도, 부모와 사춘기 자녀 사이 같은 일상의 소소한 갈등도 이 방법이 좋은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감하는 말 하는 법을 따로 배워 본 적 없고, 연습해 본 적도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시도해 보면 어떨까. 다섯 가지 공감하는 말 사용법을 제안해 본다.

첫째, 상대방의 말을 다시 반복하거나 정리한다. “…였다는 말씀이군요” “…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둘째, 상대방의 감정을 말로 대신 전해준다. “정말 화가 났겠군요” “많이 속상하셨겠습니다”. 셋째, 그런 감정이 생긴 이유를 묻는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넷째,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일단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생각했군요” “그리 생각할 수 있지요”. 다섯째, 상대방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마음고생 많았겠습니다”. 한두 마디만으로도 타오르는 불을 끄는 소화기 같은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에는 공감할 수 있다.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는 설득은 감정이 해소된 후, 그다음 문제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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