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받은 노벨문학상이 정치편향적? 핵심은 체제비판 자유다 [노정태가 소리내다]

노정태 2024. 10.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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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일부에서 그의 시각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제기해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 지난 10일 오후 8시(한국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소설가인 한강이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24년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국가적 경사를 두고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웨덴 한림원이 말하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불만이다. 한강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장면들을 주된 소재로 삼는 작가인데, 그의 ‘편향된’ 시각이 노벨상을 받았으니 기뻐할 수 없다는 취지다. 노벨 문학상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주어지는 상이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노벨 문학상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상과는 다르다. 정치적 맥락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노벨 평화상과 더 가깝다. 그러니 사과가 빨갛다고 비판할 수는 없듯 노벨 문학상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없다. 진짜 질문은 바로 그 노벨 문학상의 정치적 지향이 무엇이냐다.

「 자유민주주의 이상 반영하는 상
현대사 담은 소설도 같은 맥락
뜻깊은 수상 정치적 악용 말아야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벨 문학상은 기본적으로 ‘서구권 외 문학의 발견’을 한 축으로 삼았다. 그렇게 일본 문학이 ‘발견’됐다. 1968년 공교롭게도 메이지 유신 100주년이 되던 해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스웨덴 한림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적인 정서의 진수를 표현하는 위대한 감수성을 지닌 그의 이야기 통제력에 이 상을 드립니다.”

노벨 문학상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은 자유민주 진영의 핵심적 가치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평화, 인권, 민주주의, 체제 비판 등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상을 받는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평화 운동, 특히 반핵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이력이 없었다면 일본 소설 특유의 양식인 ‘사소설’(私小說ㆍ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소재로 쓰인 소설)을 갱신해 낸 문학적 업적이 있었다 한들 노벨상을 받았으리라 장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지난 11일 오전 제주의 한 서점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들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겐자부로·모리슨 수상 의미 돌아봐야


서구 주요 언어 작가들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미국의 토니 모리슨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빌러비드』 『가장 푸른 눈』 등 모리슨의 대표작은 모두 미국의 흑인들이 겪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소재로 삼고 있다. 미국의 인종주의에 대한 처절한 내부 고발이다.

10년 후인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존 쿳시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쿳시의 대표작인 『포』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패러디하여 자본주의와 인종차별, 서구 문명의 허위 의식을 해부한 작품이다. 쿳시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 악명 높은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될 때 이미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경우,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군사 정권의 독재를 겪고 있었지만 그는 문학을 민주화 투쟁의 도구로 삼지 않았다. 대신 엄청나게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문학적 역량을 통해 문학의 모더니즘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심지어 그는 소설로 철학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선취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칠레의 독재자였던 피노체트의 훈장을 받았을 때 노벨상과 영원히 멀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노벨 문학상이 정치적인 이유로만 주어지는 상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와 선을 그은 채 노벨 문학상을 논할 수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그 정치적 성격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답은 간단하다. 국제주의와 자유민주주의다. 가능한 넓은 세계의 작가 중,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당연히 전제하고, 평화, 인권, 민주주의, 체제 비판 등의 가치를 표방하거나 적어도 충돌하지 않는 이들이 주로 상을 받는다. 물론 예외가 없지 않으나 기준 자체는 뚜렷하다. 그래서 영국의 도박 사이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을만한 후보가 누구일지 추려내고 베팅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첫 수상자가 나온 지 123년 만의 일이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국가로는 한국이 40번째 국가가 됐다. 11일 스웨덴 한림원의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따르면 첫 수상자는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각 2명, 인도와 이스라엘이 각 1명이다. 아시아 수상자는 모두 남성으로 여성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 한 작가가 처음이다. 한 작가의 수상으로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다섯 번째, 전세계적으로는 마흔 번째 수상국이 됐다.

인권·평화·민주주의 목소리에 주목


여기서 진짜 질문을 한다. 노벨 문학상의 정치적 지향은 우리의 그것과 다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를, 특히 북한과의 평화적 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인권을 포괄하는 개념인 행복 추구권을 규정한다. 우리는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및 수많은 공직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체제 비판적인 개인과 세력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공산 독재와 스스로를 차별화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고 자리 잡는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과 폭력이 벌어졌다. 그러한 일을 응시하고 현 체제에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 역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 중 하나다. 한강은 바로 그런 시각을 문학으로 담아냈을 따름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역사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척 왜곡하여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 스스로를 ‘민주 진보 진영’으로 칭하지만 민주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사람들. 그들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정치적으로 악용할지도 모른다. 그런 무지와 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결국 우리는 평화, 인권, 관용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근간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한강의 첫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대한민국의 두 번째 노벨 문학상을 꿈꿔본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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