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이 호구? 발등 찍는 ‘배째라’ 통신사
최근 통신업계가 연달아 뭇매를 맞고 있다. 각종 꼼수를 활용해 소비자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속도가 더 느린 4G 사용자에게 5G 사용자보다 비싼 요금을 받는가 하면, 장기 사용자가 계약 해지 시 더 많은 위약금을 물도록 약관을 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기 사용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인 ‘선택약정할인’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통신비 할인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여론 반발이 거세지고, 국정감사에서 압박이 이어지자, 통신 3사는 “잘못을 수정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LTE 속도도 느린데 요금 더 내
현재 통신업계가 지적받는 문제는 크게 3가지다. 요금 역전 현상, 선택약정할인제도 위약금 차별 그리고 선택약정할인제도 홍보 미비다.
요금 역전 현상은 LTE 요금제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5G 사용자보다 더 많은 요금을 내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4G LTE는 중저가, 5G는 고가 요금제에 속한다. 4G 요금제를 선택하면 속도가 느리고 제공되는 데이터양도 5G 요금제보다 적다. 5G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는 불거지지 않은 문제였다. 5G 요금제는 기본 10만원을 넘는 고가였고, 4G는 4만~7만원대 중저가에 요금이 형성됐다. 그러나 통신 3사가 요금 합리화를 위해 5G 요금제를 세 차례 내리고, 고객 확장을 위해 중저가 요금제를 만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5G 요금은 하락하는데, 4G 요금은 제자리에 머물면서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의 월 5만원 LTE 요금제는 데이터 4GB를 제공하고, 속도도 느리다. 반면 5G 요금제는 월 4만9000원에 데이터 11GB를 더 빠른 속도로 지원한다. 통신도 느리고, 지원받는 데이터 총량은 약 40%에 불과한데 더 비싼 요금을 내는 것이다. 통신 소비자 사이에서는 “LTE 이용자가 주로 청소년과 노년층이라 잘 모르니 일부러 고가 요금을 받은 것 아니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요금 역전 현상만큼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는 것이 ‘선택약정할인제도’다. 선택약정할인제도란, 특정 통신사를 일부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쓰는 대신, 요금 25% 할인을 받는 제도다. 단말기 개통 시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았거나, 공시지원금을 받았더라도 단말기 이용 기간이 24개월을 초과하는 시점부터는 언제든지 가입이 가능하다. 약정 기간은 12개월과 24개월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12개월과 24개월 모두 요금 할인율은 25%다. 도중에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통신사는 고객이 오래 쓸수록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24개월 약정 고객이 유리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요금제를 만든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약정할인 중도해지금(할인반환금)을 분석한 결과, 24개월 약정의 불이익이 12개월보다 컸다. 5G·10만원 요금제의 경우 최대 위약금은 12개월 약정이 10만원(계약 이후 6개월)이고, 24개월 약정은 20만원(계약 이후 12개월)이다. 12개월이 지나면 12개월 약정자는 위약금이 발생하지 않지만, 24개월 약정자는 20만원의 위약금을 고스란히 납부해야 한다.
정책을 알리는 ‘홍보’도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택약정제도 존재를 알지 못해 사용하지 않는 이용자가 1229만명에 달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8월 말 기준 1230만명의 이용자가 선택 약정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 이용자들이 선택약정에 가입했다면 약 1조4000억원의 통신비 할인을 받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과 여론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통신업계는 머리를 숙였다. 10월 8일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영섭 KT 대표는 “앞으로 역전 현상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하겠다. 선택약정 고지에 대해서도 약관 변경에 대해 정부와 협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임봉호 SK텔레콤 커스터머사업부장도 “지난해 11월 LTE 단말 사용 고객에게 기가바이트 단가가 낮은 5G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전체적인 요금 개편 때 해당 부분을 잘 참고해서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수현 LG유플러스 컨슈머부문장은 “해당 현상을 인지하고 있다. 역전 현상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 LTE에서 5G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적 개선 없다면 해결 힘들어
제4이동통신 등 선택폭 늘려야
통신업계가 요금제로 꼼수를 부리다 여론 반발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스마트폰 할부 금리를 시중금리의 3배 가까이 받다 논란에 휩싸였고, 2020년에는 고객에게 고가 요금제를 쓰도록 유도하다 소비자 질타를 받았다. 2022년에도 강제로 5G 가입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인해 항의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 독과점 구조가 깨지지 않으면 ‘꼼수’ 논란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신사 선택폭이 지나치게 좁은 현재의 기형적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선택지는 상당히 제한돼 있다. 제조사는 사실상 애플과 삼성전자 ‘복점’ 구조다.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 아이폰과 갤럭시 외에는 뾰족한 선택지를 고르기 힘들다. 통신사도 3곳뿐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중 하나를 무조건 써야 한다.
‘알뜰폰’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알뜰폰 시장 47%가량을 통신사 자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고가 요금제도, 저가 요금제도 통신 3사가 완벽히 장악한 구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신 3사는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지 않는다. 점유율, 주파수 등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통신업계 공동의 이익이 걸린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힘을 합친다. 중저가 요금제에 턱없이 부족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통신 3사는 올해 들어 3만원대 5G 요금제를 선보였지만 제공 데이터양이 4~6GB 수준으로 5G 사용자의 월평균 사용량(28GB)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세 회사의 요금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은 기업이 점유율과 매출 상승을 위해 타사와 차별되는 정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독과점 체제가 굳어진 통신업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비자는 통신 3사 외에는 선택지가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완전자급제 등 소비자 선택폭을 높여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완전자급제란 통신사는 서비스만 제공하고 단말기는 판매할 수 없도록 분리하는 제도다. 현재 국내는 통신사가 단말기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단말기만 별도로 구입해 통신 서비스 가입이 가능하지만, 홍보가 잘돼 있지 않아 모르는 이가 많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현재 단말기 판매점이 신고 또는 등록을 하면 이동통신 가입도 가능하게끔 하는 ‘절충형 단말기 자급제’를 법제화해야 한다. 제조사는 단말기 공급 경쟁, 통신사는 요금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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