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출발 알린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9월 27일,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가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첫날부터 주가가 21% 상승하며 화제를 모았다.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주간 기관 순매수 1위 종목으로 등극, ‘핫루키’의 면모를 뽐냈다.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비(非)방산 부문이 떨어져 나온 회사다. 반도체 장비, 보안 장비 제작을 주력으로 한다. 처음 분할 소식이 알려졌을 때는 시장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방산·항공우주 등 한화그룹의 신성장동력이 집중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았다. 상장 직후 상황이 반전됐다. CCTV(보안) 사업의 높은 현금 창출력과 반도체 장비 산업 성장세가 주목받으며 ‘핵심 회사’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화그룹 승계 작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10월 미래비전총괄로 합류한다. 김 부사장은 유통·로봇에 이어 반도체와 보안 사업까지 맡음으로써 존재감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HBM 수혜까지 기대된다는데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기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시큐리티(한화비전), 산업기계장비(한화정밀기계)를 분리해 만든 회사다. 중간 지주사로서,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자회사로 둔 형태다.
핵심 사업부는 CCTV 등 보안 장비를 생산하는 한화비전이다. 국내 CCTV 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로 매출 1조원이 넘고, 영업이익률(OPM)은 15%에 달해 높은 현금 창출력을 가진 알짜 회사로 꼽힌다. 주력 시장은 미국이다. 전체 매출 60~70%가 미국 시장에서 발생한다. 국내는 각종 규제가 많아 CCTV 산업 성장성이 높지 않다. 때문에,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타진해왔다, 2014년부터 보안 수요가 많은 미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했다. 차츰 점유율을 높이던 한화비전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 이후 미국 시장 매출이 급성장했다. 당시 각국 공장 폐쇄 등 조치로 물류 공급망이 무너졌다. 이에 따른 여파로 액시스·모토로라 등 보안 장비 업체는 제품 납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반면, 한화비전은 부품 협력 업체를 다중으로 보유한 덕분에 적기에 제품을 공급했다. 이 시점을 계기로 한화비전은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어젖혔다. 현재 북미 시장점유율 3위까지 올라섰고, 2위 업체인 액시스를 넘어서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향후 전망은 꽤 밝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해 미국 내 한국산 CCTV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덕분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산 보안 장비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CCTV를 비롯한 중국산 가전 안에서 백도어(정보전송용) 칩이 발견되고 있다. 보안이 필수인 네트워크 장비에서조차 백도어 칩이 나온다. 중국 업체는 외부에서 쉽게 수리하기 위한 칩이라고 해명하지만, 미국 현지는 사실상 ‘스파이 기기’라고 내다본다. IP 주소만 알면 중국 본토에서 미국 내 CCTV 영상에 접근할 수 있어서다. 이를 막기 위해 관련 법령이 하나씩 나오는 추세다.
법령과 규제로 중국 기업 힉비전·다후아·화웨이 등의 정부기관 입찰 자체를 막고 있다. 이들 세 업체는 세계 보안 장비 시장점유율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기업이다. 보안 장비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국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입찰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빈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가 업계 최대 관심사다. 한화비전뿐 아니라 액시스, 모토로라 등이 적극 뛰어들고 있다. 보안 장비 시장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된 기업과 달리 한화비전은 영업망, 기술 지원망 등을 다 준비해온 덕분에 현재 (중국 기업 규제의) 상당한 수혜를 입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새로운 먹거리로 꼽히는 AI 사업도 순항한다. CCTV에 AI 기술을 입혀 영상을 분석하는 기술로 화제를 모은다. AI는 현재 보안 장비업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다. 한화비전은 한국, 미국, 베트남 세 곳에 AI 연구소를 두고 연구·개발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성과는 이미 나타나는 중이다. CCTV 산업 최강자인 중국 업체를 제치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중국 업체는 AI를 활용한 얼굴 인식에 강점을 보인다. 최대 고객인 중국 정부가 사람 감시 기능을 우선시한 결과다. 반면, 북미 국가와 서유럽은 얼굴 인식에 거부감이 심하다. CCTV로 사람을 찾을 때 얼굴로 구분하는 게 사실상 불법이다. 대신 인상착의 등 사물을 인식해 인물을 추적한다. 중국산 업체들이 기술 경쟁력을 내세우기 힘든 환경이다. 미국 시장에 맞춰 한화비전은 사물 인식에 최적화된 AI 솔루션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증권사 맥쿼리는 “한화비전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합한 감시 카메라와 분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서구권 국가들이 중국산 보안 시스템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적과 매출을 한화비전이 책임진다면, 주가 상승을 이끄는 사업부는 한화정밀기계다. 산업용 장비, 스마트팩토리 운영 솔루션을 제조한다. 전자부품을 PCB 기판 위에 자동으로 조립해주는(칩마운터) SMT 장비가 주력이다. 해당 제품 매출이 전체 매출 중 약 60%에 달한다.
최근 한화정밀기계는 AI 핵심 반도체인 HBM과 관련한 접합 장비(본더)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시설 증설에만 1700억원을 투자했고 개발 인력을 100명 이상 확보했다. 차세대 반도체인 HBM3E는 물론, 미래 제품인 HBM4와 HBM5까지 적용이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 있다. 이를 근거로 증권가에서는 한화비전 주가를 HBM 본딩 강자인 한미반도체와 동종업계(Peer Group)로 묶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반도체는 PER(주가수익비율)만 66배가 넘을 정도로 성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회사다. 한화비전 반도체 장비 사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남 김동선, 본격적으로 지휘봉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사명은 4개월 동안 존속된다. 2025년 1월 1일부터 한화비전과 합병하고 사명을 한화비전으로 바꿀 계획이다. 지분만 갖춘 단순 지주회사가 아닌 보안 장비(시큐리티)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 지주사 형태로 바뀐다. 한화정밀기계는 그대로 자회사로 남는다. 본궤도에 올라선 시큐리티 사업에 힘을 주는 동시에 장기 성장동력인 반도체 장비를 천천히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10월부터는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미래비전총괄’로 합류한다. 글로벌 전략 기획과 청사진 수립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이로써 김 부사장은 기존에 맡고 있던 유통·레저·로봇 외에 기계·장비 업체도 담당하게 됐다. 2023년 기준, 한화비전 연매출은 김 부사장이 기존에 맡고 있던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보다 2배가량 높다. 유통과 레저라는 그룹의 한 축을 맡았음에도 다른 형제에 비해 비교적 무게감이 떨어졌던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 재계 관계자는 “방산이나 금융만큼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성장성이 높은 산업을 새로 맡은 만큼 김 부사장도 바쁜 행보를 보일 것이다. 로봇·반도체 장비, AI 솔루션 등 신사업이 안착한다면, 형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뽐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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