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판 NSC' 소집 뒤 폭파쇼…정부 "강력히 규탄"
북한이 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하면서 한국과 연결된 육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앞서 지난 9일 총참모부 보도문을 통해 '영구적 국경 차단'과 요새화를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이른바 '평양 무인기 침범 사건'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재정립하려 속도를 내는 가운데 김정은은 '북한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강경한 정치 군사적 입장"을 밝혔다.
남북 육로 완전 단절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군은 이날 정오쯤 경의선 및 동해선 일대에서 폭파를 일으킨 뒤 중장비를 투입해 추가 작업을 진행했다. 합참은 이를 "(남북) 연결도로 차단 목적"으로 추정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8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차단했는데, 이번에 도로까지 폭파하면서 남북 간 육로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차단됐다. 이미 해당 도로를 사용하지 않은 지는 오래 됐지만, 완전한 단절이라는 상징적 무게감이 작지 않다.
합참은 "(폭파로 인한) 우리 군의 피해는 없다"며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MDL) 이남 지역에 대응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은 북한군의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한·미 공조 하에 감시 및 경계태세를 강화한 가운데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양쪽에 각각 1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폭파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도로의 남쪽 방향으로 6m 높이의 가림막을 설치하고 MDL 북쪽 10∼70m 지점에서 폭파 작업을 실시했다. 폭파에 의한 파편은 수십m 높이까지 치솟았다는 게 합참 측의 설명이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유엔군사령부에 통지문을 보내 "공사에 다수의 우리 측 인원과 중장비들이 투입될 것이며 폭파 작업도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또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날 폭파 현장에는 검은색 차량이 등장했다. 이를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최고 지도부가 현장 방문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재정립하기 위한 북한의 움직임은 지난해 말부터 포착됐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5월에는 동해선, 7월에는 경의선의 철도 레일 및 침목을 제거했다. 8월엔 경의선 열차 보관소까지 해체했다.
이날 폭파를 통해 단절을 물리적으로 완료하면서 이제 남북을 연결하는 육로는 실질적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통로만 남게 됐다. 합참 관계자는 "오늘 아스팔트를 날린 지점에 우선 남북 간 차단을 나타내는 콘크리트 방벽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며 요새화 후속조치를 전망했다.
정부 "강력히 규탄"
정부는 이날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폭파에 대해 "남북 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매우 비정상적 조치"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4년 전 대북전단을 이유로 남북 간 합의 하에 1년 넘게 운영해왔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폭파했던 행태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며 "이러한 퇴행적 행태를 반복하는 모습에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는 북한 요청에 의해 총 1억 3290만 달러(약 1809억원) 규모의 차관 방식으로 건설됐다. 통일부는 "차관에 대한 상환 의무가 여전히 북한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대남 위협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김여정은 이날 경의선·동해선 폭파 직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나흘 연속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한국 군부깡패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상공을 침범하는 적대적 주권 침해 도발 행위의 주범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도발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이라고 위협했다. 다만 김여정은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은 첫 직접 등판
김정은도 직접 나섰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경의선·동해선 폭파 전날인 14일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적들의 엄중한 공화국 주권침범 도발사건"과 관련한 보고를 들었으며, "정찰총국장(이창호)의 종합분석 보고와 총참모장(이영길)의 대응 군사행동 계획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총참모부는 한국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며, 지난 13일 전방 전역에 전투 준비 태세 지시를 하달했다. 정찰총국은 대남 도발을 총괄하며, 2010년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범이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 11일 무인기 침투 사실을 공개한 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나선 건 처음이다. 이번 사안을 '최고존엄'이 직접 관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협의회에는 총참모부·정찰총국의 보고 외에도 △국방상(노광철)의 군사기술장비 현대화 대책 보고 △당군수공업 담당 비서(조춘룡)의 무장장비 생산실적 보고 △국가보위상(이창대)의 정보작전상황 보고 등도 이어졌다. 이는 군사 작전뿐만 아니라 대응무기체계, 군수지원, 국내외 정보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통상적으로 당 중앙군사위원회라는 회의체가 있음에도 새로운 형식의 회의를 개최하고,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의도를 예단하지 않고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당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북한의 군사 분야 전반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무인기가 추가로 자신들의 영공을 침범할 경우 군사적인 보복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예고한 만큼 김정은이 직접 종합 점검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측의 무인기 전단살포를 내부 기강 및 체제결속의 계기로 계속 이끌어가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무기 배치 검토 가능성도
김정은은 협의회에서 "당면한 군사활동 방향" "나라의 주권과 안전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억제력의 가동과 자위권 행사에서 견지할 중대한 과업"고 제시했다. "당과 공화국 정부의 강경한 정치 군사적 입장"도 표명햤다.
이를 두고 북한이 최근 공개한 유도 기능 적용 240㎜ 방사포(다연장로켓포)나 '화성-11라'형으로 명명된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카드를 검토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 국방과학원은 지난 8일 국방공업기업소에서 생산 중인 240㎜ 조종방사포탄의 검수시험사격을 진행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은 지난 2월에도 유도 기능을 갖춘 240㎜ 방사포를 개발했다고 밝혔고, 8월에는 김정은 참관하에 해당 무기체계의 검수사격을 진행한 바 있다.
또 '화성-11라'형(CRBM)의 경우에는 북한이 물량 공세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 8월 5일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인계인수 기념식에서 250대의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가 국경 제1선 부대에 인도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군 안팎에선 1대당 4개 발사관을 탑재한 이들 발사대를 공개한 것은 최대 1000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대남 핵사용까지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협의회에서 언급한 "억지력"은 대체적으로 핵무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술핵 내지는 핵무기 사용까지 은연 중에 암시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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