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M버터플라이 | 시누아즈리와 자포니즘,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푸치니가 작곡한 ‘나비부인’은 1904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당시는 유럽에서 ‘자포니즘(Japonism)’이 한창일 때였다.
반 고흐의 초기 작품은 대체로 어둡고 칙칙했다. 파리로 건너가 자포니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고흐 그림은 다양한 색채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고흐의 파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탕기 영감의 초상화(1887년)’가 꼽힌다. 자신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아낌 없이 지원해준 후원자이자 반 고흐라는 화가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준 탕기 영감을 고흐는 아버지처럼 여겼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탕기 영감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림 뒤 배경에 뜬금없게도 일본 후지산이 그려져 있다. 파리에서 활동한 고흐의 그림에 왜 후지산이?
‘우키요에’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지? 일본 에도시대(1603~1867년)에 서민층을 중심으로 발달한 풍속화를 일컫는다. 우키요에에서 ‘우키요’는 ‘덧없는 세상’ ‘둥둥 떠다니는 세상’이라는 의미다. ‘덧없는 세상, 인생 신나게 즐기며 살아보자’ 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이 우키요에다. 주로 목판화로 만들어졌는데, 파도와 후지산으로 유명한 호쿠사이가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대가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라는 작품은 제목과 작가는 몰라도 그림을 보면 대부분 “아~” 할 만큼 유명한 그림이다. 파도나 후지산 같은 풍경도 있지만, 풍속화인 만큼 게이샤, 광대, 요괴 등 다양한 인물과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일본풍 즐기고 일본 문화에 매료된 ‘자포니즘’
상류계급의 오락이었던 오페라를 조금 더 가벼운 서민적인 오락물로 만든 게 오페레타다. 오페라와 뮤지컬의 중간 어드메쯤? 1885년 런던 사보이 극장에서 초연된 ‘미카도’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극 중 일본 왕 이름이 ‘미카도’다. 얼핏 보면 메이지유신 이전 개화되지 않은 일본 사회를 비웃고 풍자하는 내용 같아 한때 영국과 일본 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일기도 했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는 평이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달리 바탕에는 선량한 인간성이 깔려 있다? 뭐 그런? ‘미카도’의 성공에 영향을 받았을까. 그 시절 즈음 푸치니는 런던에서 ‘나비부인’이라는 연극을 본 후 바로 오페라 ‘나비부인’을 작곡했다.
푸치니는 나비부인을 작곡하면서 중간중간 일본 민요 ‘사쿠라 사쿠라’와 군가 ‘미야상 미야상(宮さん 宮さん)’ 등 다양한 일본 음악을 집어 넣었다. 핀커튼과 초초상이 혼례를 올리는 장면에서는 심지어 일본 국가 기미가요 선율을 활용했다. 이런 이유로 ‘자포니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지만, ‘서양인 남성을 애절하게 사랑한 동양인 여성’ 스토리는 사실 자포니즘이라기보다 오리엔탈리즘에 가깝다. 외피는 유럽에 거세게 불었던 일본풍에 기대 만들어진 일본풍 오페라지만, 실제는 ‘동양은 뭔가 모자라고 그래서 서양을 숭배해야 하고...’ 이런 식의 속마음이 짙게 깔려 있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사고방식의 스토리다.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명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년)’으로 인해 유명해진 용어다.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자포니즘’과 유사한 단어가 ‘시누아즈리(Chinoiserie)’다. 자포니즘의 주역이 일본이라면, 시누아즈리의 주인공은 중국이다. 시누아즈리는 중국풍, 중국 양식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사실 서구에서는 자포니즘보다 시누아즈리가 먼저였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의 후기 바로크·로코코 양식의 미술에 가미된 중국풍 시누아즈리가 시작된 계기는 중국의 청화자기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1988년 집필한 희곡 ‘M.버터플라이’는 1988년 세상에 알려진 베이징 주재 프랑스 외교관 베르나르 부르시코와 경극 배우 스페이푸의 실화를 바탕으로, 오페라 나비부인 모티브를 더해 만들어졌다. 섹시한 남성배우의 대명사 제레미 아이언스가 베르나르, ‘마지막 황제’에서 마지막 황제 푸이 역을 맡았던 존 론이 스페이푸로 나온다.
1964년, 중국 대사관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프랑스인 르네 갈리마르는 우연히 오페라 극장에서 나비부인 역할을 맡아 노래 부르는 송릴링을 보고 한 눈에 매료된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는데... 나비부인과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갈리마르가 진심이었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보다 시누아즈리 쪽? 싶기도 하다~ 송릴링은 자신을 찾아온 갈리마르에게 “순종적인 동양 여성과 잔인한 백인 남성, 그게 당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상 아닌가요?”라며 다그친다. 이미 나비부인 스토리를 다 알고 있으니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직후 이야기가 살짝 이상하게 흘러간다. 집으로 찾아온 갈리마르에게 차를 대접하며 송릴링이 하는 말.
하나에도... 다 함축된 의미가 있는 거
예요. 저... 남자를 집에 초대해 본 적
이 한번도 없어요”
그러면서 고개는 숙이고 두 손 모아 아주 고이고이 작은 중국 찻잔을 갈리마르에게 건넨다. 그런데 찻잔 대신 찻잔을 든 송릴링의 손을 덥석 잡는 갈리마르... 그리고... 그렇게 혹시?는 설마~가 됐다는 이야기. 몇 세기가 지나도 오리엔탈리즘은 변함이 없다. 수줍게 차 한잔을 건네며 나 자신도 다 가지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차마 남성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신비하게 매혹적인 동양인 여성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누아즈리’ ‘자포니즘’ 그림·도자기·공연에서 종종 발견
자포니즘의 대명사 ‘미카도’도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로얄 크라운 더비’라는 영국 도자기 브랜드가 있다. 로얄과 크라운은 둘 다 왕실 조달 업체임을 뜻하는 단어다. 더비 사는 1775년 조지 3세 시절에 ‘크라운’ 칭호를 받고, 1890년 빅토리아 여왕 때 ‘로얄’ 칭호를 받아 로얄 크라운 더비가 됐다. 로얄 크라운 더비의 대표적인 시리즈가 ‘미카도’다. 오페레타 미카도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접시는 디너, 라지샐러드, 샐러드, 디저트 등 크기가 다른 접시마다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당시 영국인이 상상한 일본인 모습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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