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지은 '스승 가람 이병기'

김삼웅 2024. 10.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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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32] 제자 최승범은 전북대학과 대학원에서 가람의 강의를 듣고 훗날 <가람시조선> 을 정리하고

[김삼웅 기자]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 (주)CPN문화재방송국
고매한 인격과 학덕을 남긴 스승 밑에는 우수한 제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가람 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많은 제자를 길렀고 사후에도 유덕과 유언을 잊고자 하는 학인들이 있었다.

"우리 국문학계의 태두요 시조 시인으로서의 가람의 명성은 고교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바, 이 어른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데 대하여 나는 몹시 설레는 가슴이었다."고 회고한 제자 최승범은 전북대학과 대학원에서 가람의 강의를 듣고 훗날 <가람시조선>을 정리하고 <가람문선>의 편찬위원으로 '연보' 작성 등 어려운 일을 맡았던 대표적인 제자이다.

전북대학에서 교수와 인문과학대 학장 등을 지내고 <한국수필문학 연구>등의 저술에도 스승의 길을 따른 후학으로서, 2001년 6월 범우사에서 <스승 가람 이병기>를 지었다. 가람 연구의 귀중한 사료가 된다. 필자도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인용·참고하였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이렇게 썼다.

헤아려 보면, 올해는 가람 탄생 110주년, 가람 서거 33주년 되는 해이다. 뵈옵던 일이 어제만 같은 데 어느덧 이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추모의 정 더욱 간절하다. '백세지사(百世之師)' 라는 말이 있다. 가람 선생에게 이 칭호를 올린다면 어떨까. 앞날에도 능히 만인의 스승이 되실 만한 훌륭한 어른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간, 스승을 향한 그리움이 일 때마다 여기저기 발표하였던 글들을 6월 맞이에 한 자리에 모아보기로 하였다. 발표 시기와 지면 관계로 이야기의 중복이 많은 점, 미리 양해를 구하여 마지 않는다. (주석 1)

책은 제1부 가람 연구를 위하여, 가람 이병기 선생 전, 제2부 아호 가람, 가람의 인간상, 가람의 기행, 두견주, 가람과 난초, 난향 머금은 난초, 가을이면 생각나는 사람, 용화산행, 가람선생 추모의 밤에, 가람의 독서론, 제3부, 입추단장, 가람과 소월, 가람과 석정『가람문선』서문에 대하여, 가람의 시가연구, 가람의 한시, 가람 산문의 매력, 가람의 간찰, 가람의 잠언·명언, 제4부, 스승님 가신지 8년, 친지·후배의 가람 이야기, 가람연보·저서목록 순으로 꾸며졌다.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주)CPN문화재방송국
여기서는 <가람의 기행>에 대해 소개한다.

강의에 한창 흥이 나시면, 맨 앞좌석에 앉은 학생의 얼굴에까지 침이 튀는 것도 아랑곳없이 마구잡이 육담(肉談)식의 말씀이었고, 당신의 이야기에 당신이 취하여 웃으시기도 잘 했다.

모시야 적삼 안섶 안에
연적(硯滴) 같은 저 젖 보소
담배씨만치 보고 가소
많이 보면 병 납니더.

동래 지방의 이 민요를 음조(音調)까지 붙여 실룩실룩하는 독특한 입모습으로 읊으시며, 수사(修辭)의 묘미와 내용의 소박 진솔함을 되풀이 말씀하셨다. '모시야 적삼'의 '야'와 '병 납디더'의 '더'에 이 노래가 지닌 수사의 묘미가 있고,

"도리둥실한 연적과 같은 젖퉁이는 옷섶이 팔랑할 때 참으로 담배씨만치 쪼끔만 봐야지 많이 보면 상사병 나지. 거짓없는 내용이야"

하시면서 한바탕 웃음이었다.

데설궂은 친구는 한 반의 여학생을 흘끔거리며 책상을 치고 따라 웃기도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점잖은 육담이시다.

영해 영덕 긴 삼거리
널캉 나캉 웬 정 많아
아침저녁 따라더냐
새벽 길쌈 즐기는 년
사발옷만 입더란다.

살아서 뺑덕어미처럼 휘놀아나다가 수의할 옷감조차 남기지 않고 죽은 여자를 알몸으로 묻을 수는 없으니 그 곳에다가 사발이라도 덮어준다는 '사발옷' 대목의 해설에 이르면 여학생들은 숫제 고개마저 들지 못한 채 앉아 있곤 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가람의 이러한 육담, 음담은 들어서 그다지 추하거나 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 사랑방 어른들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속에서 학생들은 우리 고전문학을 재미있게 접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문리를 터득해낼 수 있었다. (주석 2)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석
1> 최승범, 앞의 책, 5쪽.
2> 앞의 책, 79~8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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