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지은 '스승 가람 이병기'
[김삼웅 기자]
▲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
ⓒ (주)CPN문화재방송국 |
"우리 국문학계의 태두요 시조 시인으로서의 가람의 명성은 고교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바, 이 어른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데 대하여 나는 몹시 설레는 가슴이었다."고 회고한 제자 최승범은 전북대학과 대학원에서 가람의 강의를 듣고 훗날 <가람시조선>을 정리하고 <가람문선>의 편찬위원으로 '연보' 작성 등 어려운 일을 맡았던 대표적인 제자이다.
전북대학에서 교수와 인문과학대 학장 등을 지내고 <한국수필문학 연구>등의 저술에도 스승의 길을 따른 후학으로서, 2001년 6월 범우사에서 <스승 가람 이병기>를 지었다. 가람 연구의 귀중한 사료가 된다. 필자도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인용·참고하였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이렇게 썼다.
헤아려 보면, 올해는 가람 탄생 110주년, 가람 서거 33주년 되는 해이다. 뵈옵던 일이 어제만 같은 데 어느덧 이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추모의 정 더욱 간절하다. '백세지사(百世之師)' 라는 말이 있다. 가람 선생에게 이 칭호를 올린다면 어떨까. 앞날에도 능히 만인의 스승이 되실 만한 훌륭한 어른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간, 스승을 향한 그리움이 일 때마다 여기저기 발표하였던 글들을 6월 맞이에 한 자리에 모아보기로 하였다. 발표 시기와 지면 관계로 이야기의 중복이 많은 점, 미리 양해를 구하여 마지 않는다. (주석 1)
▲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 (주)CPN문화재방송국 |
강의에 한창 흥이 나시면, 맨 앞좌석에 앉은 학생의 얼굴에까지 침이 튀는 것도 아랑곳없이 마구잡이 육담(肉談)식의 말씀이었고, 당신의 이야기에 당신이 취하여 웃으시기도 잘 했다.
모시야 적삼 안섶 안에
연적(硯滴) 같은 저 젖 보소
담배씨만치 보고 가소
많이 보면 병 납니더.
동래 지방의 이 민요를 음조(音調)까지 붙여 실룩실룩하는 독특한 입모습으로 읊으시며, 수사(修辭)의 묘미와 내용의 소박 진솔함을 되풀이 말씀하셨다. '모시야 적삼'의 '야'와 '병 납디더'의 '더'에 이 노래가 지닌 수사의 묘미가 있고,
"도리둥실한 연적과 같은 젖퉁이는 옷섶이 팔랑할 때 참으로 담배씨만치 쪼끔만 봐야지 많이 보면 상사병 나지. 거짓없는 내용이야"
하시면서 한바탕 웃음이었다.
데설궂은 친구는 한 반의 여학생을 흘끔거리며 책상을 치고 따라 웃기도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점잖은 육담이시다.
영해 영덕 긴 삼거리
널캉 나캉 웬 정 많아
아침저녁 따라더냐
새벽 길쌈 즐기는 년
사발옷만 입더란다.
살아서 뺑덕어미처럼 휘놀아나다가 수의할 옷감조차 남기지 않고 죽은 여자를 알몸으로 묻을 수는 없으니 그 곳에다가 사발이라도 덮어준다는 '사발옷' 대목의 해설에 이르면 여학생들은 숫제 고개마저 들지 못한 채 앉아 있곤 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가람의 이러한 육담, 음담은 들어서 그다지 추하거나 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 사랑방 어른들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속에서 학생들은 우리 고전문학을 재미있게 접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문리를 터득해낼 수 있었다. (주석 2)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석
1> 최승범, 앞의 책, 5쪽.
2> 앞의 책, 79~8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 명태균, 김건희 "우리 오빠 용서해줘" 카톡 공개...대통령실 "친오빠" 황당 해명
- "한달에 500만원" 꿀알바가 아닙니다
- 전 세계에 치명적인데... 미국·유럽도 침묵하는 '이것'
- '역주행' 대통령... 오죽하면 야당서 '히틀러' 언급까지
- 수도권 인근 섬인데 트레킹, 낚시, 어촌체험까지? 대단한데
- "산 올라가면 안 될 수준", 산불진화대원 장비 '열악'
- "소비자 불만 빅3 배달앱은 쿠팡, 배달의민족, 요기요"
- "윤건희·명태균 게이트, 반드시 죗값 치러야"
- 노벨문학상 '정부 축하' 챗지피티에 물었더니? "문체부 업적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