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패악만 친절하게 그린 '전,란', 아쉽다
[이정희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복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강동원. 2009년 개봉작 <전우치> 이래 언제나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한 장면이다. 마찬가지로 <전, 란> 역시 강동원의 믿고 보는 멋진 폼에 의지한 바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 란>을 설명하는 건 아쉽다. 박찬욱 감독의 각본, '죽었는데 또 죽이고 싶다는'는 어떤 관객의 말처럼 빛난 연기를 선보인 선조 역의 차승원, 애와 증을 오가는 이종려 역의 박정민, 그리고 진선규, 김신록 등 그 이름 만으로도 증명되는 출연진의 호연이 돋보였다.
영화의 절정, 해무가 낀 바다에서 세 사람이 마주 선다. 도망 노비이자 의병이었던 천영(강동원 분), 임금의 명을 받고 일본이 숨긴 보물을 찾아나선 이종려(박정민), 그리고 일본군의 깃카와 겐신(정성일 분).
분명 두 사람은 조선인이고, 한 사람은 일본인인데, 이들의 칼 끝이 엇갈린다. 천영을 향해 겨누어지는 조선인 이종려와 일본인 겐신의 칼 끝. 겐신을 쳐내고 나면 이종려가 달려온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종려와 겐신 역시 서로를 겨눈다. 누가 누구의 적인가? 거칠게 달려온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장면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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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 |
| ⓒ 넷플릭스 |
때는 임진왜란을 앞둔 시기. 정여립의 목이 내걸린 이유는 바로 '대동계', 양반과 천민이 너나 할 것 없이 대동한 세상을 만들자 했던 그 주장은 '효수'로 막을 내렸다. 그 효수 당한 광장에 도망 노비 천영이 끌려간다.
자신의 이름 자를 쓸 줄도 몰랐던 천영. 아비는 양인이었지만, 어미가 노비였던 소년 천영은 하루아침에 노비 신세로 전락한다. 그가 끌려간 곳은 이종려의 집, 이종려의 아비는 무관 집안의 전통을 잇고자 아들에게 무술 수업을 시켰고, 아들이 대련에서 밀릴 때마다 그 죄를 물어 노비를 쳤다. 이제 막 또 한 명의 노비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그 노비 대신 천영이 초릿대 앞에 다리를 걷어붙일 차례였다.
하지만 천영은 자신에게 닥친 숙명을 거부한다. 밤을 도와 담을 타 한 달음에 자신의 집을 향한 천영, 하지만 그곳은 이미 그가 돌아갈 집이 아니었다. 그렇게 낙인만을 남긴 천영의 첫 번 째 도망. 다시 돌아온 천영은 쓰러져 간 다른 노비와 달리, 그 스스로 종려의 스승이 되어 그의 무예를 일취월장 시킨다.
노예로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대신, 천영은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을 택한 것이다. <전, 란>은 임진왜란과 그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감독이 끌고 가고자 하는 건 바로 주인공 천영, 그가 운명에 맞서 선택한 이야기이다.
우선은 주인의 매질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그가 외려 종려를 훈련시킨 것에서 시작해, 노비였던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종려 대신 과장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런 그의 선택은 죽음을 재촉하고 이제 다시 두 번째 도망 노비의 신세가 된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천영은 청의 검신이 되어 세상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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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 |
| ⓒ 장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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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 |
| ⓒ 넷플릭스 |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 사회 속 군상을 그려내고자 한다. 거기에 정여립의 대동계를 위시한 조선에 움뜨는 혁명적인 '대동 사상'을 기반으로 한 완고한 신분제에 대한 의문으로 영화의 엔진을 달군다. 또한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장점을 한껏 살려낸 '칼' 대결 신이 영화를 빛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영화적 장치들이 감동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어린 시절 종려와 천영이 죽마고우가 될 정도의 우정에 진득한 공을 들인 반면 의심한 번 없이 분노로 가득차는 이종려의 캐릭터라던가, 도망 노비였던 천영이 왜 의병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아쉽다. 즉, 영화는 가장 운명적이어야 할 등장인물들의 선택의 순간 가장 불친절하다. 선조의 패악은 친절하되, 의병들의 캐릭터와 운명과 선택은 '답정너'처럼 다뤄진다.
<전,란>은 끊임없이 운명에 저항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인 천영이라는 인물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존 인물 의병장 한명련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 영화는 사실들의 나열 혹은 강조만으로 영화적 설득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천영에 대한 개연적 공감보다, 마치 그의 화려한 칼 솜씨를 위한 영화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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