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김건희 예산’을 경계한다
# 지난 8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 국정감사 현장.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에게 물었다.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과 감염병 전문병원 중 뭐가 더 중요한가?”, “어디 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조 장관) “다 중요하다.”(지 청장), “근데 기획재정부는 마음투자 사업이 더 중요하단다. 질병청에서 수도권과 제주에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을 구축하겠다고 예비타당성(예타) 면제를 세 차례나 신청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그런데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단 한 번의 신청으로 바로 통과됐다.”(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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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마음건강 지원, 개 식용 종식
총사업비 수천억 사업 예타 면제
‘과속 스캔들’이 좋은 정책 망칠라
」
올해 7월 시작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에게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2021년 OECD 국가 중 우울증 1위다. 문제는 이런 좋은 사업에 김건희 여사 관련 뒷말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 여사는 국민의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해 8월엔 자살 관련 구조업무를 하는 현장 경찰관들과, 다음 달엔 자살 관련 단체 및 유족들과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민의 정신건강을 국정 중요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고, 올해 6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를 열어 정신건강 정책의 대전환을 선포했다. 이 회의 직후 자살 유가족 등과의 간담회는 김 여사가 단독으로 진행했다. 김 여사는 ‘세계 자살예방의 날’인 지난달 10일 퇴근시간에 교통을 통제하고 마포대교 도보 순찰을 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부인 미셸 여사가 아동비만 퇴출 캠페인을 열성적으로 주도한 것처럼 김 여사도 국민의 마음건강과 자살 예방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총사업비 7892억원에 달하는 이 사업의 예타를 건너뛴 건 잘못이다. 예산의 합리적 배분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그르칠 수 있다. 마음건강 지원사업 대상은 올해 8만 명에서 2027년 국민의 1%인 50만 명까지 늘어난다. ‘과속 스캔들’을 경계해야 한다.
# 10일 기재부 국감에선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질의했다. 천 의원은 개 식용 종식법을 대통령실도 보도자료에 ‘김건희법’이라고 표현했다며 “법률명에 영부인 성함이 들어간 경우가 있었느냐”고 했다.
“‘김건희법’ 예산은 프리패스, 하이패스인가?”(천 의원), “법령에 근거를 둔 경우에는 예타를 면제하는 조항이 있다.”(최 부총리), “개 식용 산업은 사양산업인데, 사양사업 폐업 지원에 3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사례가 있나?”(천 의원)
개 식용 종식법은 올해 초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반려인구 1500만 시대(동물보호단체 주장)다. 개 식용 금지는 공감대가 많다. 폐업을 지원하려면 보상이 불가피하다. 관련 사업의 총사업비 3562억원은 예타가 면제됐다. 하지만 천하람 의원은 개 식용 종식에 1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육 중인 개는 47만 마리에 달하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개들을 어떻게 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주변에서 사라지는 보신탕집을 보면서 임기 내 종식을 목표로 서두르지 않았다면 폐업 비용이 훨씬 줄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 식용 종식법을 ‘김건희법’으로 부르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유승민 전 의원은 “천재적 아부”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김건희법’이나 ‘김 여사 사업’이 ‘김건희 예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회가 잘 따져보길 바란다. 전 국민 마음건강 지원사업 같은 좋은 취지의 사업도 성과를 잘 따져가며 단단하게 다지며 가야 한다. 김 여사 그림자가 사업 진행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쏟아지는 김 여사 스캔들이 국민의 마음건강을 해친다는 비아냥마저 들린다. ‘병 주고 약 주냐’는 말은 안 나와야 한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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