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지구가 주주”라는 파타고니아… 혁신 넘어 혁명 이끄는 기업

2024. 10. 1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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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감동시킨 친환경 경영철학

패스트패션 반대·언패셔너블 운동
비싼 가격에도 세계적 지지 얻어
창업주도 중고차… 운영비는 아껴
韓 기업들도 경영 모델 고민해야

이윤 극대화가 기업의 목표라는 상식에 정면으로 맞서는 파타고니아가 지금 경영학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2023년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1위에 선정됐다. 지금 뉴욕 거리에는 파타고니아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웃도어 업체인 파타고니아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범세계적 존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파타고니아는 2022년에 창업주 이본 쉬나드가 30억 달러가 넘는 전체 지분을 환경단체와 비영리 재단에 기부해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가 2022년 9월 14일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제목의 편지를 고객들에게 쓰고 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 동영상에서 쉬나드는 “우리가 지구에 헌신한다면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호소했다. 파나고니아 홈페이지

이윤 추구와 거리가 먼 경영

메인주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에서 자란 쉬나드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외롭게 자랐다. 그는 암벽 등반에 재능을 보여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복무할 때 북한산 인수봉에 자신의 이름을 딴 등반 코스를 개척하기도 했다. 등산 장비로 사업을 시작한 쉬나드는 1973년에 환경보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파타고니아를 창업했다. 처음부터 그에게 기업은 이윤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친환경 이상의 실현 수단이었다. 쉬나드는 “자본주의적 현실과 회복이 필요한 지구환경 간 균형을 되찾기 위해 창업했다”며 “지구가 우리의 주주”라고 선언한다. 고객도 수익의 원천이 아니라 함께 친환경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친구와 동지로 생각하고 적극 협력한다.

기존 거액 기부자들이 이윤 추구 결과 창출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이었던 반면 쉬나드는 경영 과정 자체를 환경운동으로 인식하고 모든 상품의 제조에 친환경, 재활용, 유기농 원자재를 사용한다. 또 공동체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고용 안정과 복지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납품 업체 종업원들의 복지도 적극 지원하며, 이익 여부와 상관없이 매년 매출의 1%를 기부해 왔다.

완벽한 품질과 지독한 비용 절감

친환경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파타고니아는 영어 R로 시작하는 전략인 ‘상품의 생산·소비 줄이기(Reduce)’ ‘기존 상품을 수리해 쓰기(Repair)’ ‘기존 상품을 재사용하기(Reuse)’ ‘기존 원자재를 재활용하기(Recycle)’에 초점을 맞춘다. 이 친환경 전략은 파타고니아의 원가 구조와 수익성을 나쁘게 만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쟁 업체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임에도 불구하고 취지에 공감하는 고객들의 열광적 지지로 성과가 꾸준히 증가했다.

파타고니아는 완벽한 품질에 집착한다. 완성품뿐 아니라 천과 실까지 재활용하려면 품질이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유행에 따라 입고 버리는 의류와 품질이 다르다. 고객들도 완벽한 품질을 신뢰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한다. 또 파타고니아는 다양한 혁신으로 업계를 선도했다. 1984년 개발한 가볍고 따듯하며 부드럽고 견고하면서 땀을 잘 흡수하는 인체 친화적 섬유 ‘캐필린’은 글로벌 의류산업 전체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캐필린을 통해 야외활동에서 얇은 옷 여러 벌을 겹쳐 입는 ‘레이어링’ 패션이 전 세계에 대중화된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할인 행사나 대형 온라인 쇼핑몰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항상 정가를 고수한다. 그렇지만 경영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비용을 절약한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과 품질에 대한 투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비용을 과격할 정도로 절약한다. 스포츠 행사 등에 광고를 전혀 하지 않으며 출장에도 제일 싼 티켓을 이용하고 창업주도 허름한 중고차를 직접 운전하는 등 극단적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유지한다.

철학 중심 경영과 ‘언패셔너블 운동’

21세기가 시작되며 기업은 이윤만 추구하면 된다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사회적 책임이 중시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환경 문제에 1970년대부터 도전해 온 파타고니아는 시대정신을 앞서간 기업이다. 투철한 친환경 철학에 기반해 전체 경영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철저히 실행해 왔다. 파타고니아는 본사 현관에 경영 구호가 아니라 ‘죽어버린 행성에서는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다’라는 환경철학가 데이비드 브라우어의 선언을 걸었다. 파타고니아는 철학을 정립하고 발전, 확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최고철학관리자’(CPO·Chief Philosophy Officer)를 중심으로 모든 의사결정에 친환경 철학을 반영한다.

파타고니아 구성원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일하고 싶은 이상적 기업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담은 ‘리스판서블 컴퍼니(Responsible Company)’를 정리하고 수시로 보완해 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은 아예 만들지 않고 사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구호 아래 ‘패스트패션’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유행을 안 타는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언패셔너블(Unfashionable)’ 운동을 적극 추진해 왔다. 또 구매한 상품이 지겨워지더라도 폐기되지 않고 재활용되도록 중고 상품의 재판매와 재구매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원웨어닷컴(wonwear.com)이나 원웨어 트럭을 통해 중고 상품 유통을 지원한다.

진정성의 경영을 향한 역사적 대전환

1970년대 시작된 쉬나드의 친환경 경영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쉬나드는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대다수 경영자와 달리 손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혁명가적 자세로 기업을 경영했다. 그는 검소한 낡은 옷을 입고 싼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휴대전화도 없이 생활한다. 쉬나드는 지분 정리 과정에서도 기업공개나 경영권 매각 등을 통해 큰 부를 창출할 수 있었지만 환경보호와 직원 복지를 지키기 위해 비상장 상태로 지분 전액을 기부했다.

진정성을 가진 혁명가적 경영자는 고객들이 동지가 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모든 것을 이익 극대화 관점에서 접근하던 기존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수명을 다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기업과 경영자 모델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이미 연한이 끝난 신자유주의적 단기 성과주의에서 못 벗어나고 모든 구성원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 가까이 성장했으나 사회적으로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률 등으로 ‘헬조선’을 만드는 데 일조한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도 무엇이 미래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기업경영 모델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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