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요트로 세계여행…11세 로빈이는 지구 반 바퀴 돌며 성장 중
‘버킷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것을 말해요.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거나 만드는 중이고, ‘세계여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목록이지요. 프랑스의 작가이자 시인인 쥘 베른 역시 소년 시절부터 세계여행이란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도 배를 타고 말이죠. 쥘 베른은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 도시 낭트 근처의 섬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일화에 따르면 소년 쥘은 몰래 배를 타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멀리 떠나려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고 해요. 단단히 화가 난 아버지에게 소년은 “앞으로는 꿈에서만 여행하겠다”고 말했다고 하죠. 세월이 흐르고, 소년의 꿈은 훗날 엄청난 모험과 환상이 가득한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되어 세상에 남았습니다.
시간이 훌쩍 흐른 2024년, 지금 우리 곁에도 쥘 베른처럼 요트를 타고 세계여행 중인 소년이 있어요. 이름은 이로빈. 열한 살, 초등학교 5학년 나이에 아빠와 엄마, 누나 그리고 형들과 여섯이서 2023년 1월 그리스에서 출발해, 올 5월 11일 한국 통영에 도착했죠. 세계 일주 481일 만에 지구 반 바퀴, 10개 나라를 여행한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어요. 얼마 전에는 KBS ‘인간극장’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죠. 하지만 대부분 어른들의 눈으로 본 여행기였어요. 그래서 소년중앙이 나섰어요. 가족 중에서도 소중 독자 또래인 로빈이에게 그만의 세계 여행기를 물었죠. 로빈이는 쥘 베른의 소설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사진을 보내왔답니다.
소중: 로빈아, 너와 너의 가족을 소개해줘.
로빈: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캐나다에서 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가족들과 요트를 타고 세계여행 중인 이로빈이라고 해. 우리 가족은 모두 여섯 명이야. 선장인 아빠 이우석(46), 엄마 이다리(39), 누나 이다인(16), 큰형 이다우(15), 작은형 이우빈(13), 그리고 나야.
소중: 온 가족 세계 일주라니 너무 멋지다. 어떻게 떠나게 됐니.
로빈: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캠핑카 세계여행을 꿈꾸셨어.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요트로 세계여행을 하는 가족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으셨대. 그 뒤로 차근차근 준비하시면서 우리한테도 요트 세계여행에 관해서 물어보셨지. 그때부터 나도 마음속으로 준비하게 된 것 같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아서 1년 정도 홈스쿨링을 해보니, 더욱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2023년 1월 드디어 출발하게 된 거야!
소중: 여행을 시작한 지 1년도 넘었구나, 그동안 어느 나라를 다녀왔는지 알려줘.
로빈: 지난해 1월 그리스에서 이동 수단이자 우리의 집이 되어 줄 요트를 샀어. 아빠가 요트 자격증을 따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를 실컷 여행했지. 그리스에서 첫 출항을 해서 튀르키예에 도착한 게 그해 4월이야. 3개월 동안 머물면서 튀르키예를 여행하고, 7월에는 수에즈 운하를 건너 8월 이집트 후루가다에 닻을 내리고 한 달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봤지. 다시 요트를 타고 홍해를 건널 때는 수단을 지나 지부티에 도착해 9월을 그곳에서 보냈어. 아덴만을 지나 인도양을 건너는 데는 28일이나 걸렸기에 스리랑카 갈에 도착하니 10월 말이 다 되었지 뭐야. 스리랑카에서도 한 달 동안 여행하고, 벵골만을 건너면서 인도네시아 사방에 들려 기름을 보충하고 11월 말레이시아 랑카위에 도착했어. 그곳을 3개월 동안 둘러보고, 2024년 2월 태국에 입국했어. 그 뒤에 말라카 해협을 따라서 말레이시아 포트딕슨·조호르바루를 여행하고, 싱가포르 해협을 지나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 있는 미리로 향했어. 여긴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촬영지로도 유명해. 4월에는 미리를 떠나 23일 동안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건넜어. 필리핀 푼타푸에고와 일본 이시가키 섬을 차례로 거쳐, 5월 11일 드디어 대한민국의 통영에 도착했어.
소중: 요트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면 어떤 점이 좋아?
로빈: 우리 가족은 여섯 명이라 여행 한 번 떠나려면 짐이 어마어마해. 캠핑카로 다녀도 힘들었거든. 그런데 요트엔 방과 화장실이 네 개씩 있고 짐 실을 공간도 넉넉하고 편해. 방이 네 개라서 돌아가면서 혼자 쓰는데, 이번엔 내 차례라 완전 좋아! 우리 요트엔 이름도 있어. 우리 가족이 모두 이씨잖아. 아빠가 “이씨 가족의 전설을 써 보자”는 의미를 담아 ‘리전드(LEEGEND)’라고 지었어.
소중: 요트 생활은 어때? 불편하거나 무섭진 않아?
로빈: 나도 처음엔 떨어질까 봐 엄청 긴장했어, 하하. 지금은 적응이 돼서 무섭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아. 전기는 태양광이나 발전기로, 물은 워터메이커라는 장비로 만들어 사용해. 먹을 거는 여행지마다 들릴 때 잔뜩 장을 보는데 의외로 나라마다 장 보는 재미가 쏠쏠해. 튀르키예랑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가 없어서 계속 못 먹었어. 이슬람을 믿는 지부티에서도 그럴 줄 알고 잔뜩 실망했는데, 거긴 프랑스 사람이 많아서 프랑스 마트가 따로 있더라고 그래서 거기서 삼겹살을 샀어. 어찌나 반가웠는지 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나 봐. 너무 비쌌지만, 엄마가 내 눈을 보고 덜컥 사주셨어.
소중: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구할 것도 같은데?
로빈: 맞아, 바다낚시도 해. 한 번은 정말 커다란 참치를 잡았거든. 아빠가 그걸로 초밥이랑 회덮밥을 만들어주셨어. 아, ‘바라쿠다’란 물고기 알아? 별명이 ‘바다의 무법자’로 불릴 정도로 엄청 무시무시한 물고기야. 바라쿠다를 잡은 날은 아빠가 타코 요리를 해주셨어. 엄청난 비밀 하나 가르쳐줄게. 우리 아빠는 캐나다에서 요리사셨거든. 그래서 바다 위에서 아빠가 해주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레스토랑에 온 기분이야.
소중: 요트에서는 바다뿐인데 답답하진 않니.
로빈: 바다에서는 알람 없이도 일찍 일어나게 돼. 그러면 예쁜 일출을 볼 수 있어. 인도양을 건널 때였어. 바다 위에 우리 배밖에 없었고,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데 ‘아, 정말 멋있다’란 생각밖에 안 들더라. 반대로 안타까운 풍경을 마주할 때도 가끔 있었어. 예쁜 바다 위에 쓰레기들이 떠다니는 걸 보면 속상해. 요트 프로펠러에 버려진 로프가 걸려서 아빠가 물속에 들어가 빼낸 적도 있어.
소중: 한국에 도착했을 때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해.
로빈: 길고 긴 여행 끝에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좋았어.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온 건 처음이었거든. 엄마·아빠가 태어난 곳이자, 내 뿌리가 시작된 곳이라고 생각하니 더 반가웠어. 한국에서 지내면서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요트에서 할 수 없었던 축구도 부지런히 하러 다니고 있어. 그런데 한국말이 서툴러 친구 사귀기가 좀 어렵더라고. 그래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이 배우고 싶어.
소중: 한국에서는 어떤 추억을 남기고 있니.
로빈: PC방에 처음 가봤는데 엄청 신기하고 재밌더라. PC방이 있는 나라에서 살다니 부러워. 친구들과 함께 축구나 농구를 하는 것도 좋아. 배 위에서 치킨이랑 짜장면 배달시켜 먹는 것도 재밌어. 요트 여행하면서 사귄 친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는데 한국 친구야. 여기 대한민국에서 만난 게 아니라, 지부티에서 만났어. 지부티에 머물면서 매일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놀았지.
소중: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너의 하루 일과를 들려줘.
로빈: 정박했을 땐 대부분 현지 여행을 해. 약속이 없으면 일어나서 팔벌려뛰기로 아침 운동을 해. 그리고 홈스쿨링을 하고 아침을 먹은 다음 도서관에 가거나 오후엔 축구하러 가. 돌아와 요트에서 저녁을 먹고, 형들이랑 게임을 하고, 일기를 쓰고 자.
소중: 홈스쿨링으로 뭘 공부해?
로빈: 캐나다 교육 과정에 있는 내용을 배워. 앱을 이용해 영어·수학 등의 과목을 공부하지. 그리고 책도 많이 읽고, 언어 공부도 하고 있어.
소중: 가족이랑 24시간 붙어있으면 불편하진 않아?
로빈: 형들과 나는 공부도, 게임도 같이해.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인 셈이지. 당연히 조금 불편할 때도 있고, 형들이랑 싸울 때도 있어. 그렇지만 재밌는 일들이 더 많아. 싸운 후에 혼자 있으면 심심해져서 금방 화해하고 또다시 재밌게 놀아.
소중: 함께 여행하는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로빈: 아빠·엄마! 우리 앞으로도 여행 즐겁게, 안전하게 잘해요. 누나·형들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우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소중: 한 번이라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
로빈: 갑자기 태풍이 오면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세게 쳐. 요트가 미친 듯이 흔들릴 땐 힘들었어. 그때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어. 그 순간 우리의 선장인 아빠는 “바람과 파도에 맞서서 가는 것보다 바람과 파도에 배를 맡기고 가야 한다”고 하셨어.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 그런데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가 잠잠해지는 거야. 그 뒤에 돌고래들이 찾아와 오랫동안 우리 배 곁에서 놀다 가는 걸 봤어. 함께 폭풍우를 잘 견뎌낸 우정 같은 게 생긴 걸까? 그땐 나도 너무 좋았어.
소중: 세계 일주를 떠나기 전과 지금,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어?
로빈: 여행하면서 잘 먹어서 그런지 키가 엄청 컸어. 무려 10cm나 커서 지금은 150cm가 됐어! 열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배운 게 많은 거 같아. 지도를 보면 내가 여행했던 곳과 그곳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떠올라. 어떤 나라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어떤 나라는 손으로 밥을 먹지.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배웠어.
소중: 로빈, 너의 꿈이 궁금해.
로빈: 꿈은 아직 모르겠어. 게임이랑 만화를 좋아해서 그것들을 마음껏 하고 싶어.
소중: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니.
로빈: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하다 보면 분명 재밌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 하하.
소중: 남은 세계 일주 계획도 알려줘.
로빈: 지금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았는데, 남은 반 바퀴도 마저 돌 거야. 어디로 가느냐는 리전드 호가 팔리느냐에 달려있어. 만약 한국에서 팔리면 유럽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배를 구입해 왔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여행할 계획이야.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 쪽으로 가는 거지. 안 팔려도 좋아. 리전드 호를 타고 동남아시아 쪽으로 다시 가서 여행하지 못했던 나라들을 실컷 둘러볼 수 있으니까.
소중: 너만의 다음 모험이 있다면.
로빈: 여행은 실컷 해봤으니 이제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해보고 싶어. 사실 요트로 하는 여행은 시간을 딱 정하기가 어려워. 천천히 여행하면 2~3년이 더 걸릴지도 몰라.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 여행하면서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나라를 골라서 거기서 살아보고 싶기도 해. 그럼 그곳에서 나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거겠지?
소중: 이 여행이 끝났을 때 넌 어떤 모습이 돼 있을 거라 기대해?
로빈: 지금보다 더 튼튼해지고,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워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하.
소중: 마지막으로 소년중앙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로빈: 세상에는 다양한 나라, 다른 사람들이 정말 많아.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현지 음식들을 먹어봐. 정말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 될 거야.
로빈이의 요트 세계여행을 함께하는 방법
로빈이네 가족은 유튜브 채널 ‘트레블리즈(Travelees)’와 인스타그램 ‘travleesss’ 계정을 통해 세계여행의 이모저모를 올려요. 채널 구독, 계정 팔로우를 하면 로빈이가 보내는 하루하루를 확인할 수 있죠. 댓글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면, 로빈이가 확인하고 답변도 달아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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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미숙 객원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이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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