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못 써요" 시각장애인의 한숨…유럽에선 '없는 일'
"키오스크(무인 주문·결제 기기)를 쓰려면 점원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 꼭 생기니까 그럴 바엔 처음부터 도움을 요청해 주문하고 말죠."
시각장애인 채유성(20)씨는 요즘 흔해진 키오스크를 아예 쓰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친절한 기기가 아니라서다. 26개 업종 키오스크 1002개 중 648개(64.7%)에 음성·점자표시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 기능이 없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2022년)도 있다. 채씨는 "아무리 좋은 기술·기기라도 접근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사회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이런 이유로 스마트폰·키오스크·전자책과 같은 전자 기기를 일종의 '장벽(Barrier)'으로 규정한다. 2019년 EU 이사회는 "유럽 장애인 8000만 명이 일상적인 제품·서비스에서 장벽의 영향을 받는다"며 '유럽 접근성 법(EAA)'을 승인했다.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과 다른 접근 방식은 현장에서 잘 적용되고 있을까.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장애청년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를 지난 8월 3~12일 동행했다. 유럽 접근성 법처럼 디지털 포용을 실현하려는 시도를 벨기에·프랑스·스위스에서 들여다봤다.
내년 6월 이 법이 시행되면 접근성 기준을 만족하지 않는 모든 제품·서비스에 대한 유럽 27개국 내 생산·유통이 금지된다.
인마쿨라다 포레로 EU 집행위원회 수석 전문가는 "법에 따른 접근성 개선이 없다면 장애인이 기업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성민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사무총장은 "키오스크·PC·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은 휠체어 사용 장애인을 고려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지원도 반드시 포함하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접근성 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건 유럽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인 '유럽장애인포럼(EDF)'이다. 이들은 2009년부터 "ATM 등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장애인도 손쉽게 누려야 한다"며 EU를 압박했다. EDF 수석 총괄인 알레한드로 몰레도는 "예를 들어 ATM 사용이 쉽더라도 그게 있는 건물에 장애인이 갈 수 없다면 디지털 접근성은 의미가 없다"며 "향후 물리적 접근성까지 포괄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엔 디지털 분야에 대한 장애 포괄적 접근법, 그리고 이를 챙길 정책 컨트롤타워가 아직 없는 편이다. 장애인의 디지털 기기 역량과 활용 수준도 각각 일반 국민 대비 75.2%, 82.0%(2022년 기준)에 그친다.
국제 사회는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의 역할이 디지털 접근성에서 커지길 기대하고 있다. 마리야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EU 대표부 대사는 "삼성·LG 같은 한국 기업들은 유럽 접근성 법을 통해 유럽 시장 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산하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록사나 위드머-일리에스쿠 수석 프로그램 책임자는 "빠른 기술 발전을 이루고 있는 한국은 ITU와 협력해 디지털 접근성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브뤼셀·제네바=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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