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반려동물에게서 찾는 ‘생명 갈망’

신준섭 2024. 10. 1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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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차장

출산율 하락 가장 큰 원인은
결국 경제 문제… 자녀와의
행복 찾는 인식 변화도 절실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의 인생에 이르러 성취하겠다는 식의 소유욕에 염증을 느꼈고, 다가오는 세상의 빛깔은 삭막하게 보였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소설가 한강(54)의 작품 ‘침묵’ 속 문장은 현대 한국 세태의 폐부를 드러낸다. ‘삶은 고통’이라는 그의 표현은 지금을 사는 이들의 인식 속에 스며든 기묘한 유전자를 생물학적으로 진단한 것처럼도 읽힌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강의 진단도 남편의 참신한 설득 앞에서는 힘을 잃었던 듯하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았던 현실 속 한강은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그런 것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이 말에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아이를 가지는 일이 선택지가 아닌 기피지가 된 한국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진다. 정말 우리는 아이를 갖는 일이 싫고 생명체와의 교감이 싫은가. 한국이 이 질문에 ‘그렇다’는 답이 나오는 사회라면 앞서 멸종한 생물종의 생태계처럼 사라지는 게 맞는다. 다행히도 그 답은 나오지 않을 듯하다.

이를 방증하는 근거로 아이의 대체재 또는 보완재가 된 반려동물이 꼽힌다. 1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2년에 364만 가구였던 반려가구는 11년이 지난 지난해 674만 가구까지 늘어났다. 전체 가구의 28.2% 수준이다. 이 중 자녀 없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얼마인지 정확한 집계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자녀가 아니면 반려동물이라도’라는, 교감에 대한 갈망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가늠하기는 충분해 보인다.

이를 보면 세계 최악의 출산율이라는 기록을 반전시킬 기회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다만 그전에 왜 한국 사회가 아이 대신 반려동물을 선택하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식상하지만 경제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인구의 대다수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을 한번 보자. 중산층의 정의를 소득 상·하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60%라고 했을 때 한국의 중산층은 올 2분기 기준 월평균 239만~655만원을 버는 이들이다. 집세나 고물가 상황을 감안하면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아예 못 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빚이 너무 많아 이 수치는 힘을 잃는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전셋값 포함) 비율은 156.8%로 세계 1위다. 산술적으로 월 500만원을 버는 가구의 부채가 784만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빚 때문에 한 명을 더 먹여 살리기 빠듯하다는 인식을 줄 수밖에 없는 수치다.

다른 주요한 요인도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은 ‘교육’ 문제다. 한국은 육아를 뒷받침하는 복지체계가 잘돼 있는 편이지만 인식상 충분조건을 달성하지는 못한다. 의복이나 교육에서 남들보다 우리 아이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왜곡된 책임감’이 있어서다. 빚내서라도 아이에게 명품옷을 입히고 대치동 학원을 보내야 한다. 목표가 의대면 더 좋다. 한강의 표현대로 ‘삶은 고통’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반면 반려동물은 교육에 열성을 쏟고 명품을 입히며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현대 한국인이 반려동물에게서 편안함을 찾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종합해보면 정부는 역시 꾸준히 지적이 나왔던 것처럼 경제적 측면을 더욱 보완할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이다. 사회 초년생에게 한 채에 수십억이나 하는 부동산 시장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적 측면에서도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행복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저서 ‘행복공부’에서 “완벽한 부모가 되기보다 적당한 부모가 되자”고 했다. 프린스턴대 연구진의 행복감 조사에서 최고점을 받은 활동이 ‘아이들과 놀기’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두 가지가 잘 조화돼 인터넷에서 ‘저출산 늪’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길 바란다. 한강도 인정했지만, 삶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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