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어느 배달 알바 청년의 고민
중국 청년 왕펑(王風)은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다. 그 역시 청년 실업을 비껴갈 수 없었다. 직장 잡기에 실패한 그는 배달 일을 해야 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왕펑은 번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통장에 3만 위안(약 580만 원)이 쌓여있다.
지난달 하순, 그는 ‘주가가 오르니 주식 투자를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에 계좌를 개설했다. 친구가 추천한 종목에 2만 위안을 넣었다. 그런데 웬걸, 주가가 급등했다. 이틀 사이에 무려 4000위안(약 76만5000원)을 벌었다. 한 달 꼬박 오토바이를 달려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일이 잡힐 리 없다. 그는 온종일 주식 트레이딩 사이트를 띄워 놓고 주가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배달 일 때려치우고 아예 전업 주식 투자나 할까?’ 고민 중이다. 중국 언론이 전하는 증시 폭등 스케치다.
중국 대륙에 다시 주식 열풍이 분다. 지난달 24일 이후 이어진 금융 당국의 대대적인 경기부양 패키지에 힘입어 주가는 급등세다. 상하이 주가는 불과 6일(거래일) 만에 3년여 하락치를 회복하기도 했다. 각 증권사는 쏟아지는 거래 개설 문의에 즐거운 비명이다. 국경절 연휴 기간(10월 1~7일)에도 정상 영업을 하며 고객을 맞았다.
젊은이들이 많았다. 연휴를 전후해 개설된 신규 계좌의 50% 이상이 20, 30대였다고 중국 언론은 전한다. 유력 증권사인 궈진(國金)증권의 경우 25~35세가 약 30%, 24세 이하가 약 20%를 차지했다. 배달원 왕펑은 그중 한 명이었다.
괜찮을까? 중국은 경제 규모 세계 2위의 국가지만, 자본시장은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을 보인다. 시장 수급에 따라 주가가 결정되기보다는 정부 정책에 의해 가격이 요동친다. 정책이 시장을 압도하는 중국 특유의 경제 특성이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다. 게다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부정부패가 증시를 멍들이고 있다. 그러니 주가는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롤러코스터 곡선을 그린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주가가 오른다 싶으면 너도나도 돈을 싸 들고 불나방처럼 증시로 날아든다.
경제는 여전히 낙관하기 어렵다. 올해도 1000만명 이상의 대졸 인력이 쏟아지지만 도시 일자리의 약 80%를 공급하는 민영기업은 여전히 위축되어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알바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무리 애써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최근 주가 급등은 유혹이다. 성실한 청년 왕펑마저 꼬깃꼬깃 모은 3만 위안을 그 롤러코스터 시장에 태울지 고민한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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