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법 부결됐지만…끝난 게 아니다 [신율의 정치 읽기]
부결됐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원하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이 마냥 안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최소 2표에서 최대 4표가량 나왔다. 이탈표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11월에 다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발의한다. 김 여사 특검법 발의가 거듭될수록 국민의힘에서 나오는 이탈표는 점점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김 여사에 대한 여론이 동정적으로 변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는다면, 국민의힘 의원들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그 위기는 고스란히 대통령과 정부로 전이된다.
한동훈 대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재표결 직전, 한동훈 대표는 “부결시키는 것이 맞다 생각하고 당원과 당 의원들께도 그런 설득을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탈표가 나왔고, 한동훈 대표의 당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한 대표의 또 다른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대표는 “특검법이 한 번 더 넘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미리 얘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는 현재 깊어지는 국민의힘의 고민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분명한 점은, 이런 식의 상황이 지속되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지도부 일부와 의원들은 김건희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친윤 의원 시각은 다르다.
친윤과 정권 핵심의 생각과 주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김 여사 관련 의혹이 ‘정치 공작’의 산물이라는 논리다. 정치 공작의 일환이므로 사과하거나 특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친윤 일부에서는 사과하면 오히려 사안을 키운다고까지 얘기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과했기 때문에, 사안이 탄핵 사유로까지 번졌다고 덧붙인다. 둘째, 이들은 김건희 여사 관련 일부 문제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해당 의혹은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과 친윤 입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여권은 김건희 여사 특검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일단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미흡하면 그때는 특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명품백 수수 문제에 대해 이미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수사 결과도 조만간 나올 텐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와 상관없이 논란이 잦아들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여론이 수사 결과가 미흡하다 생각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권이 특검을 더 이상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미흡하면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원칙론에 입각해 생각하면,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왔음에도 여론이 부정적이니, 더 이상 특검 수용을 미룰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실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안은 국정감사다. 이번 국정감사는 ‘김 여사 국감’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김건희 여사가 국정감사의 핵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다루는 상임위만 4개에 달하고, 김 여사 관련 국감의 증인과 참고인 수는 무려 70여명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민주당이 국회의원 면책 특권을 내세우며 김 여사 관련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국감에서 제시하면 사태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은 여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김 여사의 직접 사과, 혹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특단의 조치’ 필요성이 앞으로 더욱 대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이 계속 지속될 경우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여당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지금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여론 눈높이에 맞춰 해결하지 못하면, 지방선거와 대선에서의 승리는 물 건너갈 확률이 높아진다. 다음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지 못하면, 총선 승리도 물 건너갈 확률이 높다. 대선 이후 1년 정도 후에 총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에 총선이 치러지기에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패배하면, 그야말로 보수 정치 세력은 초라해질 테다. 당연히 ‘진보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수 정치 세력이 ‘TK 자민련’ 수준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 이는 윤 대통령에게도 유리할 것이 전혀 없다. 윤 대통령이 자신과 보수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김 여사 문제에 대해 여론에 부합하는 ‘해법’을 내놔야 한다. 지금처럼 수사 결과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는 언사만 남발하면, 자칫 보수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객관적으로 김건희 여사가 제때 사과만 했더라도, 문제가 이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테다.
이제라도 사과하면 여론이 김 여사의 사과를 받아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과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과보다는 좀 더 ‘강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 감찰관 임명은 당연하고, 김 여사 관련 여론을 적극 받아들이는 방안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민주당은 10월 8일 상설 특검법에 의한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렇다면 더욱 선제적인 과감한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설 특검은 인천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과 삼부토건 주가 조작 의혹, 22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상설 특검은 법무부 장관이 특별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국회가 본회의에서 특검 임명 요청안을 의결하면 가동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하다. 민주당은 기존 특검법안은 11월에 발의하고, 상설 특검은 별도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통령과 여당은 더욱 곤란한 상황에 빠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여론 지지를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론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아닐 경우 김건희 여사 문제는 여권 전체의 늪이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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