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새끼, 태어나는 족족 죽는다…제주 바다에 무슨일

정은혜 2024. 10. 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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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 죽은 새끼가 숨을 쉬기를 바라며 물 위로 업어 올리는 어미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모습이 포착됐다.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어미 돌고래가 힘없이 늘어진 새끼 돌고래를 머리에 이고 필사적으로 물 위로 올린다. 새끼 돌고래는 이미 숨이 멈춘 듯하다. 그래도 새끼를 살리려고 어미는 몸부림치듯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올해 제주 앞바다에서 10차례 정도 목격된 모습이다. 김병엽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교수는 “어미 돌고래가 새끼를 처음 낳으면 숨을 쉬도록 물 위로 올려주는데, 그 행위를 죽은 새끼에게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의 접근을 철저히 거부하고 부패할 때까지 들어 올리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항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매우 착잡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이런 식으로 제주 앞바다에서 폐사한 제주 남방큰돌고래 새끼는 10마리로 파악됐다. 2022년까지는 한 해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고 한다. 멸종위기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전체 개체수가 120여 마리로 적은 데다, 출산도 쉽지 않다. 암컷 남방큰돌고래는 임신 기간 12개월을 거쳐 한 번에 한 마리만 출산한 뒤 새끼를 2년간 돌보는 동안 새로운 새끼를 임신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올해 새끼만 10마리가 폐사했다는 건 태어나는 족족 죽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영우’ 방영 이후 선박 관광 급증


신재민 기자
일부 전문가들은 제주 연안의 소음공해가 최근 증가한 게 주요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새끼 돌고래들의 폐사는 최근 급격히 증가한 돌고래 선박 관광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양생물생태보전연구소(MARC)와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지난달 발행한 ‘제주 동부지역 남방큰돌고래 서식지 보전’ 정책브리프 자료에 따르면 남방큰돌고래들은 관광 선박이 접근하면 수심이 매우 얕은 연안으로 몰리고, 백상아리 같은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와 유사한 행동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장수진 MARC 대표는 “돌고래들이 선박이 접근하기 어려운 연안으로 모여 무리가 단단히 뭉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포식자를 만났을 때의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엽 교수는 “관광 선박들이 10~20m 간격으로 나타나 경쟁하듯이 돌고래에 접근하면, 이로 인해 남방큰돌고래는 포식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큰 공포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러 척의 선박이 내는 소리가 돌고래에게는 포식자가 거대한 벽을 형성해 조여 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방영된 이후, 선박이 돌고래에 근접하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주인공이 남방큰돌고래를 좋아하는 드라마 내용 때문에 돌고래 관광객이 급증했고 선박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는 얘기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관광 선박이 돌고래에 접근하다 못해 아예 선박으로 덮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남방큰돌고래 부근 50m 이내로 접근하는 등 관광 가이드를 어기면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단속도 어려울뿐더러 실효성이 없다는 게 돌고래 보호 단체들의 주장이다.


“국내서도 연안 해상풍력단지의 영향 연구해야”


제주 연안에 조성되는 해상풍력 발전이 서식지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연안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돌고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없다. 2015년 국립 수산과학원이 남방큰돌고래 서식지 손실에 대한 해양정책연구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다. 과학원 산하 고래연구소의 관찰 결과, 남방큰돌고래는 과거 제주 남부보다는 북부 해안에서 주로 발견됐지만 2012년 한림읍 해상풍력 발전 시범단지 조성 이후 인근 해역에서 무리가 발견된 기록이 전무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3월 제주도 한경면 해안에서 관광객들이 탐라해상풍력발전 단지의 풍력 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에서는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될 때의 공사 소음과 조성 이후 발전기 터빈이 일으키는 소음이 고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해양에너지관리국(BOEM)은 해상 풍력발전을 하고자 하는 해역에 해양 포유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 구역은 ‘배타구역’으로 설정해 발전기 설치를 제한하는 등 엄격한 보호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공사 중에도 사업 구역에서 해양 포유류나 거북이를 발견하면, 일정 시간 동안 작업을 중지하고 해당 구역을 회피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해외 사례를 제주도의 해상풍력 사업에도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주로 서식하는 구좌읍 앞바다에서 공공주도로 진행되는 한동·평대 해상풍력 사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026년에 착공해 2028년부터 가동할 예정인데, 착공에 앞서 돌고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풍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소음 문제를 저감하기 위한 기술을 도입하는 등 탄소 중립을 달성하면서 해양 환경을 보전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앞바다. 죽은 새끼가 숨을 쉬기를 바라며 물 위로 업어 올리는 어미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모습이 포착됐다.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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