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보안 ‘최전선’이 위험하다 [취재수첩]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10. 13.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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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를 잡으라고 만든 비밀 부대원 책임자가 모사드의 첩자였다.”

아흐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이 최근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첩보부대 대장이 모사드에 포섭된 첩자였다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보안 담당자가 상대에게 매수됐으니, 감시가 제대로 실행될 리도 없었다. 모사드는 이란의 눈을 가리고 마음껏 작전을 벌였다.

국내 산업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빈번하다고 전해진다. 산업 보안을 책임져야 할 전문가들이 포섭된 뒤 기술 유출에 적극 나선다는 것. 주요 반도체 회사 산업 보안 담당 업무를 맡았던 이가 ‘기술 유출 컨설팅’을 진행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인사 부서 담당자가 ‘기술자 영입 명단 리스트’를 작성해 외국 기업에 전달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석에서 만난 취재원은 “기술 유출 관련 수사를 하다 보면 치밀하고 기발한 방법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최전선이 뚫렸으니, 기술이 새어나가는 것은 당연지사. 이들의 활약(?) 덕에 외국 업체는 손쉽게 한국 기업의 기술과 인재를 빼돌렸다. 반도체, OLED 디스플레이 등 국가 기밀과도 같은 산업 기술이 줄줄이 외국에 새어 나갔다. 실제로 삼성전자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빼돌린 사건과 관련, 기술 유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장에는 삼성 출신 등 한국인 엔지니어 200여명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사업장으로 이직을 결심한 삼성 수석연구원은 회사 보안 시스템을 뚫고 9개월 동안 방대한 분량의 기술 자료를 빼돌렸던 사실도 드러났다.

돈에 현혹된 일부의 일탈에 한국 산업계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기술력이 무너지고 있다. 기술 유출범에게 손가락질만 한다고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 기업과 정부가 경각심을 갖고 산업 보안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기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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