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첫째가 종이 접기로 알려준 육아 비법

이지혜 2024. 10. 1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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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매번 꼭 반듯한 종이 접기여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한 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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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인간 관계도, 일도, 배움도, 그 무엇에도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엔 깊이 박혀있다. 그래서인지 어떠한 것이든 처음 시작할 때 조심스럽고 찬찬히 준비하는 것에 익숙하다.

가령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나는 빠르게 선택하기가 어렵다. 몇 달이 걸려도 괜찮다. 물건의 쓰임새가 내가 원하는 것과 부합하는지 차근차근 다 알아본 후 마음속 어딘가의 '수락 버튼'이 눌러져야만 구입이 가능하다.

찬찬히, 신중하게... 육아와 출산 뒤,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이런 내가 첫째 토끼(나는 아이들을 애칭으로 토끼라 부른다)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려니 넘어야 할 산이 꽤 많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출산 병원과 산후조리원, 심지어 가제수건과 로션, 기저귀까지 토끼와 관련한 모든 것을 찾고 고르고 '수락 버튼'을 꾹 눌러야만 하는 그런 입장이 된 것.
 엄마가 되고 나니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었다.(자료사진)
ⓒ jonflobrant on Unsplash
그렇다 보니 임신 기간 동안 누군가가 파일이나 책자 하나를 던져주면서 '이대로만 따라 하세요!'라고 차라리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물론 블로그나 유튜브에 친절한 가이드를 제공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내 상황과 딱 들어맞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출산 후엔 피로감이 더 심해졌다. 첫째 토끼를 낳은 후엔 모든 것이 처음이라 더 어려웠다. 수유 후 얼마나 안고 있다가 눕혀야 하는지도 난감하고, 뒤집기를 시작하면 질식사 위험이 있으니 잘 지켜보라는 말에 거의 뜬 눈으로 토끼를 바라보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엔 식재료를 선택하고 만들어 먹이는 것도, 자라난 토끼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낼 때도 모든 게 다 배우자와 나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들 투성이었다.

코로나가 돌던 깊은 밤, 넷째 토끼가 신생아 고열이 났을 때에는 사는 지역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 타 지역 응급실을 갈지 집에서 있을지 결정해야 할 때 무척 버거웠다.

무엇이든 찬찬히 준비하고 선택하려는 습성을 가진 내게, 자꾸만 빠른 선택을 요구하는 육아의 세계는 당연히 매운맛일 수밖에 없었다. 몸의 피로도와 정신적 피로도는 정직하게 비례했다. 아니 정신적 피로도가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찬찬히 준비하고 선택하려는 습성을 가진 내게, 자꾸만 빠른 선택을 요구하는 육아의 세계는 당연히 매운맛일 수밖에 없었다.(자료사진).
ⓒ profwicks on Unsplash
어느 날, 남편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데, 나와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구입하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웬만하면 상위에 있는 가장 많이 팔린 것을 선택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아. 이거다!' 내 머릿속이 순간 확 시원해지면서 나의 피로도를 덜어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선택해야 하는 것들은 시야를 좁혀 판매도가 높은 것 중에서 성분이 괜찮은 것, 상품평이 나쁜 것이 덜한 것을 찾기로 했다. 그 이후 나의 선택은 한결 편해졌다. 전에는 1부터 10까지 비교해야 했다면, 지금은 1부터 5 정도까지 보고 선택한다.

6살인 첫째가 요즘 종이 접기에 빠져있다. 실력이 많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서투르다. 맞닿은 면이 완벽하게 포개지지 않는다. 심지어 종이접기 책을 보고 따라 하기보단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종이 접기를 한다.

"엄마, 이건 내가 상상력을 써서 접은 거예요!"

오늘은 자신이 만든 액자라면서 조그마한 종이액자를 내게 선물했다. 네모 액자인데도 반듯하지가 않았다.

삐뚤빼뚤하면 어때, 실수 하면 어때...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첫째 토끼가 선물해준 종이 액자. 반듯하게 접거나 종이 접기 책을 따라하지 않았다. 이 종이 액자를 보며 육아의 조그마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 이지혜
그래도 작품을 만든 토끼가 꽤나 기특하고 예뻤다.

아이는 이미 종이접기 책의 사진처럼 내 작품이 똑같지 않아도, 반듯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네. 육아는 반듯한 종이 접기가 아니었어.'

꼭 자로 잰 듯 반듯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첫째 토끼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려고 해도, 어차피 완벽할 수 없는 게 인간인데 말이야.

어쩌면 육아는 내가 원하는 속도와 방식대로 할 수 없는 게 기본값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건넨, 손 위에 올려진 종이 액자를 보니 선택의 연속이 가져온 피로감을 앞세워 모든 것에서 완벽하고 싶었던 내 모습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된다.

살림도 육아도 일도 모든 것에서 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그래서 매 순간 선택이 어려웠고,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 모든 것에 신중해졌나 싶기도 하다.

아, 실수 좀 하면 어때. 완벽하지 않으면 어때. 무엇보다 첫째 나이만큼 엄마 나이도 이제 겨우 6살인 걸. 어쨌든 토끼들을 위해 날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반듯하지 않아도 조금은 흐트러져도 괜찮다고 내 마음에게 울퉁불퉁한 모양의 말을 건네본다. 새근새근. 숨소리 마저 사랑스러운 토끼 아이 넷이 잠든 밤, 작은 다짐이 절로 나온다.

"토끼들아. 엄마를 위해서도 너희를 위해서도 반듯한 종이 접기는 이제 안 할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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