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모델 마니아·코스프레도 불사…일본 새 총리는 '오타쿠' [일본人사이드]
'마인부우 코스프레'로 인기…아이돌, 카레, 고양이 섭렵한 '올 라운더'
자민당 내 온건파…한일관계 훈풍 주목
지난 1일 자로 일본 신임 총리가 취임했습니다. 제102대 총리로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총재가 선출됐는데요. 주변에서는 총리 이름이 어감이 이상한데 진짜로 '이시바'가 맞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사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에서 마니아를 부르는 '오타쿠'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일본 언론에서도 기사 헤드라인으로 '오타쿠 총리'를 많이 뽑았더라고요. 오늘은 '오타쿠 총리'로 불리는 이시바 총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시바 총리는 1986년 당시 최연소 나이 29세로 중의원 선거에 당선됐던 사람입니다. 돗토리현 지사를 지냈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대학 졸업 후 은행원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사람인데요. 사실상 일본에서 이러한 세습정치는 흔한 모습이죠.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내각에서 방위상을 지내면서 첫 입각합니다. 이후 계속해서 차기 총리 유력 주자로 등장했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선출된 것이죠.
이시바 총리가 당선된 이후 일본 언론에서는 '오타쿠(일본어로 마니아를 부르는 말) 총리'라고 많이 보도했는데요. 그의 오타쿠 모멘트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캐릭터 마인부우 코스프레를 한 사진입니다. 돗토리현 출신인 이시바 총리는 2018년 돗토리현 구라요시시 피규어 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했는데, 이때 마인부우 코스프레를 한 상태로 축사를 해서 일대 충격을 안깁니다. 박물관 측에서는 차마 미리 코스프레를 하고 나와달라 할 수 없어, 행사장에 도착한 이시바 총리에게 '모든 사람이 코스프레를 입고 참석하는데 피규어 박물관이라는 취지에 맞게 코스프레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흔쾌히 승낙했다고 하네요. 덕분에 당시 전시관이 시장이 손오공을, 돗토리현 지사는 '기동전사 건담'의 아무로 레이, 참의원이 베지터를 맡아 코스프레 최강조합을 완성했습니다.
원래 주최 측은 다른 의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 바람에 하필이면 마인부우 의상을 입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마인부우 코스프레로 진지하게 축사를 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는데요. 이걸 유머러스하게 받아 쳐준 덕분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마인부우 이시바'가 크게 각인됐고, 이시바 총리도 가두연설에 종종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마치 내가 마인부우 코스프레를 하게 된 것처럼'이라는 에피소드를 언급하게 됐다고 합니다.
코스프레에 흔쾌히 나선 배경에는 그가 실제로도 엄청난 프라모델 마니아기 때문인데요. 의원 시절에는 의원 회관에 대량의 프라모델을 조립해 전시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라고 합니다. 실제로 프라모델, 피규어 성지로 유명한 도쿄 아키하바라의 프라모델숍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됐을 정도라 하죠. 관련해서 일본에 꽤 있는 '철도 오타쿠'기도 합니다. 고향인 돗토리현에 돌아갈 때는 무조건 침대칸이 있는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것을 고집하곤 했다고 하네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데다가 카레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부한테 직접 생새우를 떼와서 의원회관에서 직접 손질해 요리하고 대접하기, 자민당 행사 전야제에 직접 향신료까지 들고 와서 카레 만들어 나누기 등도 이시바 총리의 전적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오타쿠는 '아이돌 덕질'이 빠지면 섭섭하죠. 이시바 총리는 1970년대 활동했던 일본 걸그룹 '캔디즈'의 엄청난 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귀여우니까"라고 한 마디 밝혔다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지인이랑 최애에 대한 논쟁까지 벌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또 '고양이 좋아 인간'으로도 유명한데요. 이상하게 방송에 고양이랑 함께 출연하거나 하면 고양이들이 잘 다가오는 '자석'으로 유명합니다. 어릴 적에 고양이를 몰래 데려와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게 벽장에 숨기고 우유를 주고 했던 기억이 크다고 하네요. 물론 고양이들은 한 이틀 먹고 전부 있던 야생으로 탈출하셨다고 하네요.
X(옛 트위터) 프로필에도 고양이와의 투 샷을 자주 쓰고, 방송에서 함께 출연했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는 본인 명의의 조전을 보낼 정도라고 하는데요. TV 프로그램에서는 "고양이 없이는 인간 세상이 성립할 수 없다"라고도 소신 발언을 했습니다.
4년 전의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는 일본 방송 BS테레히가시와 일본의 고양이 날(2월 22일)에 도내 유기묘 보호소를 찾아 고양이 대상 연설도 했습니다. 고양이들을 대상으로 "고양이 여러분, 정치는 고양이를 중요시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그런 것을 다짐하는 날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 것인데요.
여하튼 이런 것을 보니 재미없기로 유명한 기시다 전 총리와 다르게 친근감 굳히기는 성공한 것 같죠. 우리나라에는 그가 역사문제 등 한일관계에 있어서 온건 노선을 택하고 있어 기대를 해봄 직하다는 의견도 많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 목소리도 낸 적도 있어 그를 사실상의 '친한파'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막연하게 기대만 하기에는 그의 기반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아베파' 등 특정 계파에 소속된 것도 아니라 구심점이 약하다는 우려도 있고요. 심지어 온건파로 분류됐던 또 다른 인물인 기시다 전 총리는 연임에 실패했고,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예선 1위로 무섭게 치고 올라왔던 것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계승한 극우파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었죠. 심지어 킹 메이커로 불리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다카이치에게 "자민당 역사에서 3년 이상 총리를 지낸 사례는 7명밖에 없으니 (총리가 될) 준비하라"라고 말한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다시 극우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이시바 총리가 앞으로 정권 운영을 어떻게 해 나갈지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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