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에게 냉랭했던 朴, 기시다 찾아간 尹…한·일 정상 첫 만남

박태인 2024. 10.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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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던 모습, 세 번째로 발언한 아베 총리가 서툰 한국말로 박 대통령에게 인사말을 건넸지만 박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특수성’은 역대 한·일 정상의 첫 만남에도 늘 영향을 끼쳐왔다. 양국 지도자의 역사관과 소속 정당, 지지 기반에 따라 한·일 관계는 변화를 겪어왔고, 첫 회담은 향후 한·일 관계의 모습을 예견하는 가늠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한·일 정상의 첫 만남은 의전은 물론 눈빛과 악수, 야당의 반발 등 신경 쓸 것이 그 어떤 정상회담보다 많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신임 일본 총리와 상견례를 했다. 이시바 총리가 취임한 지 9일 만이다. 두 정상은 일정이 빡빡한 다자회의 계기에 만났음에도 약 40분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 윤 대통령은 “전임 기시다 총리에 이어 이시바 총리님과도 셔틀외교를 포함해 한·일 관계 발전을 함께 도모해 나갔으면 한다”고 제안했고, 이시바 총리는 “윤 대통령님과 기시다 전 총리가 크게 개선시킨 양국 관계를 계승해 발전해 나가고자 한다”고 화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풍경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와의 첫 만남과 확연히 달랐다. 윤 대통령은 2022년 9월 뉴욕 유엔 총회 참석 때 기시다 당시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문제로 한·일 관계가 크게 악화됐던 터라, 일본 측은 만남에 소극적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행사가 열린 빌딩으로 직접 찾아가서야 30분간 약식회담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참모들은 “우리가 먼저 찾아가는 그림은 좋지 않다. 야당이 반발할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윤 대통령이 “격식보다 만남 그 자체가 중요하다”며 성사된 자리였다. 야당에선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나왔으나, 첫 만남 뒤 신뢰를 쌓은 두 정상은 가파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두 정상은 지난달 기시다 총리 퇴임 전까지 무려 12번을 만나며 한·일 셔틀 외교를 복원시키는 등 역대 한·일 정상 중 손에 꼽히는 친분을 과시했다.

역대 최장수 일본 총리였던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 만난 일본 총리였다. 아베 전 총리는 두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모두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박 전 대통령에겐 2014년 3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2017년 7월 독일에서 열린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2017년 7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장 메세홀 양자회담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아베 총리가 태평양전쟁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터라, 차가운 표정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권유에 아베와 악수는 했지만, 한·미·일 세 정상이 손잡은 사진을 연출해 달라는 언론의 요구엔 응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과 아베는 북한과 강제징용 문제 등을 두고 극한 갈등을 벌였다. 2022년 7월 별세한 뒤 지난해 2월 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에서 아베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확신범이다. 반일을 정권 부양의 재료로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도 지난 5월 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아베 총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만나는 순간에는 좋은 얼굴로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돌아서면 전혀 진전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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