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개틀링건도 전투기에 활용했다…과거에서 찾은 해법 [Focus 인사이드]
최근 일부 매체에서 폴란드가 구매한 FA-50에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하는 문제로 한국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폴란드가 원하는 팬텀스트라이크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AESA)와 AIM-120 암람(AMRAAM)의 탑재가 미국의 비협조 때문에 진척이 없는데, 이를 한국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애초에 우리가 약속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다만 한국ㆍ 폴란드 양국 정부나 KAI 모두 공식 확인한 내용은 아니다. 진위가 어찌하든 이를 통해 전투기에서 공대공 미사일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공중전은 멀리서 적기를 레이더로 추적한 뒤 사거리 안에 들어오면 공대공 미사일로 공격하는 방식, 즉 BVR(가시권 밖) 교전이 기본이다. 당연히 상대보다 좋은 레이더와 정확한 미사일을 가진 전투기가 절대 유리하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근접전을 벌일 경우도 분명히 았다. 그래서 고전적 무장이라 할 수 있는 기관(총)포는 여전히 중요하다. F-35B처럼 처음부터 기관포를 내장하지 않은 전투기도 존재하나, 작전상 요구가 있다면 포드를 이용해 기체 외부에 장착할 수 있다. 이처럼 기관포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 중인 필수 무장임에도 공중전에서 적기를 격추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일단 공중전은 3차원 교전이어서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상대보다 높은 고도나 후방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투기가 근접전에 돌입하면 현란한 기동을 펼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리한 위치를 잡으면 목표의 진행 방향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등장한 중폭격기는 무수한 명중탄을 맞추어야 격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몇 방만 맞아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20㎜ 이상의 대구경 기관포가 전투기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관포는 연사가 느려 고속 비행하는 항공기 요격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빠르게 난사할 수 있는 대구경 기관포가 필요했다. 문제는 파괴력이 강한 대구경과 빠른 연사 속도는, 마치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의 무기로 구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일단 구경이 클수록 파괴력이 커지나, 연사가 어렵고 포구 속도가 감소해 포신 수명도 짧아진다. 당장은 비용 문제가 부차적이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 없이 이기기 어렵기에 포신 수명은 중요한 문제다. 더해서 전투기에 탑재하려면 크기도 제약이 있다. 이에 1946년부터 미국 육군항공대(현 미 공군)는 제너럴 일렉트릭(GE)과 협력해 염가이면서도 연사력이 뛰어난 전투기용 대구경 기관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발사속도를 기관총 수준으로 늘리는 데 어려움이 크자 개발자들은 19세기 중반 탄생한 개틀링건(Gatling Gun)을 주목했다. 최초의 기관총이기도 한 개틀링건은 다수의 총신을 회전해 교대로 사격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분당 7200발 발사를 목표로 6개의 15㎜ 총열을 묶어 시험에 나섰다. 그러나 1950년에서야 분당 4000발을 달성했을 만큼 연사력 향상은 쉽지 않았다.
이에 20㎜ 탄을 사용해서 파괴력을 늘리는 대안이 채택되면서 1959년 본격 배치가 시작된 기관포가 M61 벌컨(Vulcan)이다. 벌컨은 총열마다 노리쇠가 별도로 장착돼 총열이 회전하면서 순차적으로 지정된 위치에 올 때 만 발사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과열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연사가 가능했다. 여러 부속 장비로 말미암아 무거웠으나 제트 전투기 시대가 열리면서 장착에 문제가 없었고 이후 고정무장으로 급속히 사용됐다.
개발 당시부터 벌컨에 관심이 많았던 미 육군은 거리측정용 레이더를 장착한 M61A1 대공포를 개발했다. 현재는 다양한 대공 미사일이 방공의 주역이 되었어도 근거리 저고도용 대공포로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베스트셀러가 된 벌컨의 탄생 과정을 본다면 구닥다리 무기라고 무조건 폄훼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미래에도 박물관에 전시된 무기를 보고 영감을 얻어 난관에 부딪힌 문제를 해결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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