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아들 비극 반복되지 않길”… 선교사가 거리로 나온 이유

박효진 2024. 10. 12. 03: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상
정금석 선교사(왼쪽)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정슬기씨 가족 제공


얼마 전 과일 가게를 운영하던 목사님이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폐업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마을에 터를 잡고 목회와 생업을 병행하던 목사님의 폐업 소식에 개척교회를 지키며 생계를 꾸려가는 목회자들과 사모들의 어려움이 실감 나 마음이 무거웠다.

몇 달 전 개척교회를 준비하던 남편도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많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국민 알바’로 불리는 쿠팡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남편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목회만 해온 남편에게 사회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과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을 알기에 그 결정을 이해했다.

지원 절차는 간단했다. 쿠팡 앱에서 지역과 시간대를 선택하고 안전 교육 후 물류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남편은 컨베이어벨트에서 나온 상품을 배송지역별로 분류하는 일을 맡았다. 인력이 부족한 작업장에서 쏟아지는 물량을 처리하며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일하다 보면 마치 기계의 부속품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손가락과 손목 또 다른 날엔 허리와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18세부터 60세까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국민 알바 현장에는 개척교회 목회자들, 하루살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 은퇴 후 일하는 노년층 그리고 치열한 현실 속에서 분투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일하는 목회자로 교회와 일터를 오가며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한 남편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용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삶의 무게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사회의 불완전한 제도를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쿠팡 알바를 그만둔 후 남편은 택배 상자를 볼 때마다 그때의 고된 시간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는다. 나도 새벽 배송을 주문할 때마다 편리함 뒤에 노동자들의 수고가 있음을 깨닫고 ‘정말 필요한가?’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얼마 전 쿠팡 야간 배송을 하던 선교사님의 아들이 과로로 사망해 급히 귀국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남편의 국민 알바 경험 덕분이었을까. 정금석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고통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정슬기씨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 결혼 후 4남매의 아버지가 된 그는 가장으로서 1년 넘게 쿠팡 택배 기사로 일하다가 지난 5월 자택에서 사망했다.

선교지에서 귀국해 장례식장에서 아들을 마주한 사모님은 “하나님 거역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뜻 모를 고통과 환난 앞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려는 사모님의 믿음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인은 과로로 추정되는 심실세동과 심근경색 의증으로 사망했다. 주 6일 평균 77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한 달에 4번밖에 쉬지 못했다. 건강이 악화한 그는 체중이 10㎏이나 빠졌다. 쿠팡CLS 직원의 배송 압박에 “개처럼 뛰고 있어요”라는 대답은 그가 겪은 고통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아빠가 쿠팡의 연료가 됐다는데 무슨 뜻이에요?”라는 아이의 질문은 가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목숨이 연료처럼 소비되는 현실과 그로 인한 가정의 고통과 상실은 참혹하다.

가족들은 쿠팡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 정 선교사는 쿠팡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며 택배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또 다른 죽음을 막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의 사명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노동자가 더 안전하고 상식적인 환경에서 보호받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나라는 과부와 고아처럼 소외되고 희망을 잃은 이들이 보호받고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 땀 흘려 일하는 자리마다 더 정의롭고 안전한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