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삼겹살·정자 키트까지…이런 편의점은 없었다 [스페셜리포트]
# 지난 9월 30일, 서울 동대문구 복합쇼핑몰 ‘던던(옛 롯데피트인)’ 지하 1층에 새로 문을 연 세븐일레븐 동대문던던점을 찾았다. 동대문던던점은 80평 규모를 자랑하는 ‘뷰티·패션 특화 편의점’이다. 전에 없던 남다른 콘셉트 덕에 9월 27일 오픈 전부터 이미 업계 관계자 이목을 집중시킨 매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건 ‘패션·뷰티존’이다. 옷과 화장품을 전면에 내세운, 기존 편의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콘셉트다. 패션·뷰티존에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뭉’과 협업한 후드티와 양말, 마녀공장·메디힐 등 K뷰티 인디 브랜드 제품이 배치돼 있다. 매장 한편에 마련된 ‘K푸드존’에서는 라면·붕어빵 등 간식을 먹고 있는
외국인이 여럿이다. 이날 만난 세븐일레븐 동대문던던점 직원은 “매장 개점 이후 외국인 손님이 전체 방문객 60% 이상이다. K푸드는 물론 마스크팩, 스킨 등 소용량 뷰티 제품을 많이 사 간다”고 들려줬다. 매장에서 만난 20대 김 모 씨는 “편의점에서 흔히 파는 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패션·뷰티 제품까지 구경할 수 있어 새롭다”며 “편의점이 아니라 마트에 온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제는 정말 ‘다 판다’고 봐도 무방하다. 편의점이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계 ‘허브’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기존 주력이었던 간편식품을 넘어 신선식품·주류·베이커리, 최근에는 뷰티·패션에 이르기까지 취급 제품군을 빠르게 넓혀가면서다. 과거에는 마트나 뷰티 전문점, 주류 매장·빵집·카페에 가야 구입할 수 있던 제품을, 요즘은 편의점에서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최근 편의점 트렌드도 취급 품목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그야말로 ‘만물상’이 된 모습이다.
편의점이 카테고리를 확장해가면서, 업종을 불문하고 국내 오프라인 소매 채널에 편의점은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다. 반대로 제품을 판매하고 싶은 다양한 기업이나 브랜드에는 고객 접점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신규 채널로 각광받는다.
전국 5만개 점포…“가깝고 저렴해”
최근 들어 편의점은 기존에 잘 취급하지 않던 제품군까지 판매 범위를 빠르게 확장해가고 있다.
‘뷰티’가 대표적이다.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이른바 ‘편의점 빅4’는 너 나 할 것 없이 뷰티 제품 확장에 나섰다. 4사 모두 전년 대비 화장품 매출이 20% 이상 급증하는 등 분명한 소비자 수요도 확인했다. 과거에는 클렌징 티슈나 스킨·로션, 방한용 립케어 등 급하게 필요한 여행용 화장품 수요가 컸지만 최근에는 마스크팩·수분 크림 등 매출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일상에서 쓰는 화장품을 이제는 편의점에서 구입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편의점 뷰티 차별화 전략은 명확하다. ‘소용량’과 ‘초저가’다. 기존 뷰티 매장에서 판매하던 동일 상품 대비, 양은 줄이고 가격을 내리는 방식이다. 저렴한 가격에, 여러 제품을 써보고 싶은 수요를 정조준했다. 소비 특성상, 평소 편의점을 자주 드나드는 1인 가구와 1020세대가 편의점 쇼핑 중 ‘추가 구매’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기왕 편의점에서 장을 보는 김에, 초저가 화장품까지 골라 잡는 모습이다.
뷰티뿐 아니다. 여타 카테고리에서도 편의점의 ‘소용량 초저가’ 전략은 유효하다. 소포장 과일·채소, 소용량 와인·위스키, 초저가 커피, 한입 피자 등이다. 편의점 CU 관계자는 “편의점 최대 장점은 점포 접근성이다. 국내 5만개가 넘는 점포가 깔려 있는 데다 방문 횟수도 잦다”며 “빠르고 간편하다는 편의점 고유의 장점은 뷰티 같은 다른 카테고리에도 모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이 오프라인 유통 대세 채널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들어 편의점은 부동의 매출 1위 채널이었던 백화점을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유통업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편의점은 전체 16%로 전체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여전히 백화점(16.8%)이었지만 2위 편의점과 격차가 0.8%포인트까
지 좁혀졌다. 지난해 상반기(1%포인트)와 비교하면 차이가 계속 줄어드는 모양새다. 대형마트는 편의점에 밀렸다. 올해 상반기 매출 비중은 11.3%로, 2021년 편의점에 2위 자리를 내준 이후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편의점 오프라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2% 늘었지만 대형마트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명품 등 백화점 성장동력이 예전만 못하다. 대형마트 역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커머스와 편의점에 장보기 수요를 뺏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백화점과 대형마트 신규 출점이 없다시피 한 현재 상황 역시 ‘편의점 대세론’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조만간 편의점이 오프라인 유통 채널 1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품군이 계속 다양해지고 있는 데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이색 상품을 꾸준히 내놓는 등 제품력과 바이럴 마케팅에서도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제맥주부터 캐릭터 협업 상품, 크림빵 열풍과 최근 두바이초콜릿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업계가 한발 앞서 유통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며 “이색 상품으로 끌어들인 고객을, 뷰티 등 다양한 제품 구매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다면 막대한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용량 줄이고 가격 내린 ‘뷰티’ 시동
최근 편의점업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카테고리는 역시 ‘뷰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올리브영 외에 마땅한 판매 채널이 없던 뷰티 시장 틈새를 5만5000여개 전국 매장을 앞세워 비집고 들어간다는 전략이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뷰티 전문점을, 앞으로 편의점이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서 매장 수가 가장 많은 CU는 최근 3000원짜리 소용량 가성비 화장품을 새로 선보이며 뷰티 플랫폼 기능을 강화했다. CU는 코스메틱 브랜드 ‘엔젤루카’와 손잡고 콜라겐 물광 랩핑팩·비타민C 세럼·글루타치온 수분크림 등 화장품 3종 판매를 시작했다. 원래 제품과 성분은 동일하지만 용량을 3분의 1 이상 줄였다. 대신 가격은 3000원으로 고정했다. 1㎖당 가격은 오리지널 제품 대비 최대 80% 이상 저렴하다. 이 밖에 홀로그램 디자인을 적용해 독특한 연출을 할 수 있는 4500원짜리 ‘트러블 패치’도 새로 내놨다.
CU 관계자는 “CU에서 화장품을 구입한 연령대 매출 비중을 보면 10대가 42.3%, 20대가 32.3%에 달한다”며 “가격과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연령층 고객 수요를 반영해 앞으로도 독특한 가성비 화장품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GS25도 뷰티 확장에 매진하고 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뷰티 시장에서 축적한 경험치가 남다르다. 과거 H&B 스토어 브랜드 ‘랄라블라’를 운영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뷰티 입점 업체 네트워크가 잘 쌓여 있고 전문 노하우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GS25는 신상 ‘남성용 화장품’으로 재미를 보는 중이다. GS25는 올해 9월 초 민감 트러블 피부 브랜드 ‘아크네스’와 협업해 ‘아크네스 포맨 올인원로션’을 선보였다. 시중에 판매하던 200㎖ 펌프형 용기 상품을 150㎖ 튜브형으로 바꿔 9900원에 판매한다. 정상가·용량 대비 46% 할인된 가격이다. GS25에서만 살 수 있는 단독 상품으로, 판매 시작 2주 만에 스킨케어 카테고리 매출 1위를 달성했다. GS25 관계자는 “연도별 기초 화장품 남성 매출 비중이 45%나 된다. 보통은 여성이 화장품을 많이 찾지만 최근에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스킨·로션 등을 구매하는 남성 고객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세븐일레븐은 최근 동대문 복합쇼핑몰 ‘던던’에 뷰티와 패션 상품을 내세운 특화 점포를 선보였다. 뷰티·패션 제품 SKU(취급 품목 수)를 일반 점포 대비 30% 늘렸다. 판매하는 뷰티 제품만 30여종. 특히 마녀공장·메디힐·셀퓨전씨 등 인기 중소 브랜드가 입점한 것이 눈길을 끈다.
동대문던던점 외에도 뷰티 구색을 늘려가는 추세다. 남성 뷰티 카페에서 인지도가 높은 립케어 브랜드 ‘블리스텍스’ 상품 5종, 뷰티 전문점 대비 용량을 절반으로 낮춘 ‘마녀공장 퓨어 클렌징 티슈(20입)’와 ‘마녀공장 퓨어 클렌징 오일(100㎖)’ 등을 단독 판매한다.
이마트24는 지난해부터 화장품 제품군을 본격 확대하고 있다. 2022년 64종이었던 뷰티 제품이 올해는 92종까지 늘었다. 최근에는 보디스크럽, 에센스, 여성청결제, 수딩젤 등 세분화된 뷰티 상품을 추가 중이다. 올해 9월에는 화장품 브랜드 ‘플루’와 손잡고 편의점 최초 미세침 에센스인 ‘플루 시카부스터 에센스100’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자판기로 ‘골드바’ ‘중고폰’ 거래도
뷰티 카테고리뿐 아니다. 최근 편의점업계는 마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을 취급한다.
신선식품은 편의점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카테고리 중 하나다. ‘집 근처’에서 ‘소포장 신선식품’을 찾는 1·2인 가구가 늘면서 편의점 장보기가 대중화됐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양이 많은 대형마트나 슈퍼, 또 주문하면 하루 뒤에나 받아볼 수 있는 이커머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GS25는 ‘신선강화 매장’을 앞세웠다. 기존 편의점을 신선식품 특화 매장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이다. 과일·채소·두부·계란부터 생삼겹살·반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선식품을 최대 500여종 더 채워 넣었다. 지난 2022년 15곳이었던 신선강화 매장은 최근 490여곳까지 늘었다. 주택가 상권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려 올해 연말까지 10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CU도 특화점을 중심으로 신선식품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제철 과일·채소를 전면에 내세운 ‘장보기 특화점’을 선보이는가 하면, 올해 10월에는 ‘샐러드 특화 편의점’으로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2000원대 가성비 샐러드부터 6000원대 프리미엄 보울 샐러드까지, 라인업을 총 30여종으로 대폭 늘렸다. 가공란, 컵과일, 단백질 음료, 젤리 등 샐러드와 함께 곁들여 먹기 좋은 상품도 동시 진열했다. 서울 내 오피스·대학 상권에 위치한 5곳 편의점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100여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먹거리도 점점 더 다양해진다. GS25에서는 갓 구운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인 피자 브랜드 ‘고피자’와 협업으로 편의점 내 ‘즉석 피자 오븐’을 들여놓은 덕분이다. 올해 10월 초 고피자 운영 GS25 점포 수가 1000개를 넘어섰을 만큼 소비자와 점주 반응이 좋다. 지금까지 하루 평균 피자 4.1개가 팔려 나가, 누적 판매 40만개를 돌파했다.
주류 판매도 늘어난다. ‘곰표밀맥주’를 위시한 수제맥주를 시작으로 현재는 와인·위스키·막걸리·사케·하이볼 등 취급 범위가 다양해지는 모습이다. 세븐일레븐은 최근 업계 최초로 ‘생맥주’를 선보였다. 국내 수제맥주 브루어리 중 가장 많은 케그(주점 납품 생맥주)를 생산하는 ‘와이브루어리’와 손잡고 효모를 사멸시키지 않은 ‘리얼 생맥주’를 캔으로 내놨다. 생맥주 질감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투명 페트캔을 적용했고, 신선도를 위해 생산부터 유통까지 자체 맥주 콜드체인 시스템을 만드는 등 공을 들인 모습이다.
이 밖에도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다양한 이색 제품이 눈길을 끈다.
GS25는 일본 브랜드 ‘텐가’와 손잡고 집에서도 손쉽게 정자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스마트폰용 정자 관찰 키트와 성관계용 윤활제를, 이마트24는 TJ미디어와 협업으로 ‘가정용 방음 노래방 박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색 자판기’를 운영하는 편의점도 여럿이다. 주류 자판기를 비롯해 골드바와 솜사탕, 외화 환전, 세제 리필 등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편의점에서 이용해볼 수 있다. 중고폰 판매 ATM을 들여온 편의점도 있다. 이마트24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인공지능(AI) 기반 중고폰 판매 ATM ‘민팃’이다. 민팃 ATM 수거함에 판매를 원하는 중고폰을 넣으면, 스마트폰 기종이나 상태, 시세 등을 AI가 분석해 평가 금액을 바로 알려준다. 계좌 정보를 입력하면 3분 안에 입금까지 이뤄지는 식이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일부 점포에서 먼저 실험을 진행하고 반응이 좋으면 점차 늘려가는 방식으로 이색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도입해보는 중”이라며 “편의점이 쇼핑 공간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천원맥주·1900원 라떼…“저렴해야 산다”
편의점업계 내부에서도 ‘초저가 경쟁’이 치열하다. 그동안에도 가성비 상품 인기가 높았지만, 추석 전후로 물가가 한 번 더 치솟으면서 현재는 1000원대 ‘초가성비’ 상품에 수요가 몰리는 중이다. 편의점마다 1000원 이하 상품 매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가까이 치솟는 등 가격 전쟁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CU는 올해 초부터 1000원 미만 전략 제품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880원 육개장 컵라면’과 ‘990원 스낵’은 각각 누적 판매량 60만개·50만개를 돌파했다.
같은 용량 제품 대비 20%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 지갑이 열렸다. 올해 8월 내놓은 1000원짜리 두부는 출시 보름 만에 3만여개가 모두 팔렸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9월에는 컵커피 PB 제품으로 1900원짜리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선보이기도 했다.
GS25 역시 초저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덕분에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1000원 이하 상품 매출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39.4% 늘었다. 올해 8월 PB 아이스크림 4종을 500~800원에 팔기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80만개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7월부터 판매한 ‘천냥 콩나물’은 GS25 나물 카테고리 매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븐일레븐은 올해 7월부터 생필품 위주로 구성한 초저가 프로모션 ‘착한 시리즈’를 매달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청포도에이드·사과에이드 등 음료를 900원에 판매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기존 캔이나 플라스틱병 대신 ‘파우치’에 음료를 담아, 같은 용량 제품 대비 35%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했다.
‘천원맥주’도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 4월 스페인 최대 맥주 제조사 ‘담’이 만든 필스너 ‘버지미스터’를, 6월에는 덴마크 맥주 ‘프라가 프레시’를 4캔 4000원에 판매했다. 천원맥주는 누적 판매량 40만캔을 돌파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9호 (2024.10.09~2024.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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