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명문 골프장 잔디 맞아? [정현권의 감성골프]

2024. 10.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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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골프장에 가면 티잉 구역과 그린을 보고 놀란다.

잔디가 성한 곳이 없어 경기 진행에 무척 애를 먹고 수려한 미관도 해친다. 서양 잔디를 자랑하는 명문 골프장 코스마저 지난 여름 폭염으로 듬성듬성 타 들어가 거북스럽다.

임시방편으로 티잉 구역에 인조 매트를 깔았지만 스탠스를 취하기에 매우 불편하다. 골퍼에 따라 어색한 착지로 스윙을 제대로 못하겠다며 캐디에게 양해를 구하고 티 마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린 주변에서 공을 핀에 붙이는 샷은 특히 예민해서 잔디 상태가 타수와 승부로 직결된다. 그린에는 아예 붉게 맨몸을 드러낸 구역이 산재해 퍼트 정확도를 가늠할 수 없다.

결국 그린 주변 잔디가 말랐거나 아예 고사된 곳에 공이 놓이면 옮겨 놓고 진행하는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를 적용한다. 티샷, 웨지샷, 퍼트는 골프에서 가장 민감한 요소여서 골퍼나 골프장 모두에 가장 큰 관심사다.

올해처럼 폭염과 폭우, 열대야가 매년 되풀이될 것으로 예상돼 골프장들의 잔디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프로 대회를 개최하는 골프장은 물론 일반 골프장도 마찬가지이다.

지난달 인천 클럽72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 조직위원회와 골프장 관계자들은 녹아 내린 잔디를 보수하느라 악전고투를 벌였다. 대회가 열린 오션 코스는 한지(寒地)형 서양 잔디로 조성됐다.

티잉 구역과 러프 지역은 켄터키 블루 그래스, 그린과 페어웨이는 벤트 그래스이다. 한지형 잔디는 손상돼도 빨리 회복되고 겨울엔 마르지 않아 푸르름을 유지한다.

하지만 최적 생장 온도가 섭씨 25도 안팎이라 30도를 넘어가면 성장을 멈추고 뿌리가 급격히 짧아진다. 이 임계 온도를 넘기면 타 들어가고 올해처럼 고온 다습까지 더해지면 관리에 무진 애를 먹는다.

급기야 클럽72는 인근 소래 포구에서 얼음을 공수해 그린 위에 뿌리는 비상조치를 취했다. 그린 통풍을 위해 모든 홀에 대형 선풍기를 설치하고 페어웨이에는 고온에 버틸 수 있는 UV(자외선) 차단제도 살포하는 극약 처방을 단행했다.

잔디가 잘 자라지 않는 곳엔 그늘막을 세웠다. 이런 노력에도 잔디 생육에 한계를 보여 결국 프리퍼드 라이 규정을 적용했다. 진흙과 과도한 습지, 불량한 코스 상태로 인해 올해 상당수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제주 블랙스톤 골프&리조트(27홀)도 지난 8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대회를 앞두고 2개월 이상 9개홀을 번갈아 닫고 코스 관리를 했다. 하지만 서너 개 홀 일부 그린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페어웨이와 그린은 골프장의 얼굴로 보통 사시사철 푸른색을 유지하는 서양 잔디로 화장한다. 폭우 뒤에 폭염이 지속되면 잔디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고사하면서 타 들어간다.

열대야 찜통이 사람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괴롭기는 잔디도 마찬가지이다. 페어웨이든, 그린이든 잔디는 습기와 고온에 생존하기 쉽지 않다.

과다한 습도와 고열에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잔디 잎도 점점 말라간다. 햇빛에 타 죽는 것이다. 특히 한지형 서양 잔디가 치명타다.

이 때문에 그린 키퍼 등 코스 관리원들은 날씨에 웃고 웃는 농부 마음과 같다. 이래서 통기(에어레이션)하고 핀을 옮기는 작업이 눈에 많이 띈다.

전국 골프장들은 올해를 계기로 무더위에 강한 한국 잔디로 교체하는 작업을 서두른다. 서양 잔디와 한국형 잔디에 대한 골퍼의 선호도 다르다.

양탄자 같이 부드러운 서양 잔디에선 정확한 타격이 필요하다. 클럽이 공보다 조금만 뒤를 가격해도 두꺼운 뗏장이 일어난다.

제대로 맞히려고 용을 쓰다 보면 이젠 공 머리를 때린다. 클럽에 가해진 충격으로 손도 아프다.

그린 주변에선 공이 거의 바닥에 붙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쩔쩔 맨다. 범프 앤 런(Bump & run)이나 굴려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서양 잔디는 겨울에도 녹색을 띠는 추위에 강한 한지형 잔디다. 잎이 가늘고 밀도가 높아 한국 잔디에 비해 절반 이상 짧게 깎을 수 있다.

습도가 높고 더운 여름철엔 성장이 느려지고 힘이 약해 물러지거나 고사하기 쉽다. 공이 땅에 거의 달라붙어 정확한 임팩트가 요구된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 촘촘하게 형성돼 디벗 자국이 크고 선명하게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종류로 켄터키 블루 그래스가 있고 톨 페스큐, 파인 페스큐 등이다.

켄터키 블루 그래스는 페어웨이와 티잉 구역, 좋은 품질로 평가받는 벤트 그래스는 그린에 주로 식재된다. 잎이 매우 가늘고 촘촘해 짧게 깎아 그린 스피드를 높인다.

고온 다습한 한국에선 관리 유지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데 일부 골프장에선 페어웨이에도 사용한다. 1년간 관리비용이 한국 잔디보다 5억원 이상 높다고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잔디를 좋아한다. 공이 잔디에 약간 떠 있어 쓸어 치기에 적당해 뒤땅이나 토핑을 줄이기 때문이다.

금잔디(고려지), 들잔디(야지)로 대표되는 한국 잔디는 고온 다습한 여름철에 강해 난지(暖地)형 잔디로 불린다. 대부분 골프장이 사용하는데 금잔디는 가늘고 추위에 약해 남쪽 골프장에서 주로 조성된다.

한국 잔디는 잎줄기가 강하고 꼿꼿해 공을 떠받치는 힘이 좋고 발로 밟아도(답압) 잘 견딘다. 여름 전후 5개월간 공을 치기에 최상이지만 추워지면 색깔이 변해 힘을 잃는다.

이를 보완해 안양 중지 등 교배 육종이 나와 있는데 4월부터 녹색을 띠고 자라다가 7~8월 왕성하게 자란다. 더위와 건조에 강한 버뮤다 그래스라는 난지형 잔디의 생장 속도와 회복 능력도 우수하다.

가을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그린피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잔디 상태라도 바로 잡아 원성을 잠재우기 바란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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