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죽음 앞둔 이들에게 ‘존중·초월의 미학’ 바칩니다

맹경환 2024. 10. 11.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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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흐르는 대로
해들리 블라호스 지음, 고건녕 옮김
다산북스, 428쪽, 1만8500원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는 의학적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받던 치료를 중단하고,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집에서 편안하게 보살핌을 받는 활동을 말한다.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는 저자는 환자와 가족이 이 과정을 잘 헤쳐 나가도록 안내하고 환자가 가능한 한 통증 없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10년 가깝게 일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은 직업 얘기를 듣고는 ‘우울한 직업’이라고 한마디 하기도 하고,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의 ‘우울한’ 화제가 부담스러워 다른 화제로 서둘러 돌린다. 아버지는 언제 ‘진짜 간호사’로 돌아갈 거냐고 묻곤 한다. 진짜 간호사라고 하면 환자가 그냥 죽어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간호사가 아니라 진짜로 생명을 살리는 간호사를 말하는 거라며 지금도 역정을 낸다.


저자는 그래도 호스피스 간호사를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때로는 무너질 것 같은 슬픔에 빠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는 “내가 더 자주 맞닥뜨리는 건 아름다운 찰나에 잠시 멈춰 의미를 곱씹어 보며 감동에 젖는 순간,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단 사실을 깨달은 뒤에야 인생의 교훈을 알아채고 깊은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와 함께한 환자의 마지막 여정을 그려내고, 죽음을 앞둔 이들이 전해준 삶의 지혜와 감동을 담아냈다.

'삶이 흐르는 대로' 저자 해들리 블라호스. ⓒZack Smith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한다는 건 때로는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에게도 진짜 간호사 시절이 있었다. 병실을 돌아다니며 말 한마디 없이 약을 나눠주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환자 곁에 있어 주는 것, 위로하며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로 자리 잡았다. 환자들은 어느새 마음을 열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곤 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40세에 폐암으로 죽어가는 엘리자베스는 “러닝머신 위에서 인생을 너무 많이 낭비한 것 같다”는 말을 호흡하듯 내뱉었다. 그는 친구들이 바다에 놀러 가자고 했을 때 뱃살이 부끄러워서 가지 않았던 일이나 칼로리 계산에 집착해서 직접 만든 음식만 먹느라 가지 못했던 생일파티들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마흔에 죽게 될 줄 몰랐거든요. 항상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많이 못 해서 아쉬워요. 그때 그 빌어먹을 케이크를 그냥 먹어버릴 걸 그랬나 봐요.” 어려서부터 살찌는 것에 공포를 느끼며 식이장애로 고생했던 저자는 “케이크를 먹어라”는 말을 곱씹었다. 먹을 걸 토해내고 싶을 때마다 엘리자베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새겼다.

저자는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이 세상과 죽은 뒤에 마주할 세상 사이에는 ‘강력하고 평화로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됐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중간 세상(in-between)’이다. 죽기 전 어떤 환자는 죽은 엄마를 보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어려서 죽은 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신에 문제가 생겨 환영을 본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와 우리를 데려가는 ‘방문’이라고 표현한다. 환영은 불안이나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방문은 환자에게 평온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중간 세상에서는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침대에 불이 났다고 우기는 환자도 있었다. 보통은 무시했겠지만 저자는 가족과 함께 침대를 다른 방으로 옮겨줬다. 실제 그 환자가 죽은 뒤 이전 방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저자는 어려서 작가가 꿈이었지만 미혼모가 된 뒤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간호사 직업을 선택했다. 한 환자는 “책을 내게 되면 내 얘기는 꼭 넣어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실제 책을 내고 작가가 된 뒤에 생각하면 그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은 신비롭기만 하다. 저자는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삶을 마무리하며 내면의 평화를 찾은 사람, 사후 세계에 대한 자기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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