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소통 수단은 많아졌는데… 왜 말은 더 안 통할까

맹경환 2024. 10. 1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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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어요?
로저 크루즈 지음, 김정은 옮김
현암사, 360쪽, 2만원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의사소통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소통의 수단이 홍수인 시대에 살고 있다. 직접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은 물론, 전화로 문자로 이메일로 소통하고, 블로그나 SNS로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소통을 잘하고 있을까. 얼굴을 보지 못하고 보내온 짧은 문자에서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긴 문장의 글 속에서는 일부만 잘라내 본의를 왜곡하기도 한다. 소통의 시대이기보다는 오해의 시대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의사소통이 “견고하면서도 동시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소통을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들고 질적으로 방해하는 요소가 한 가지일 때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견고하다. 방해 요소가 두 가지 이상이면 의사소통이 완전히 실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하다. 책은 그 취약성이 어떤 이유로, 어떤 맥락에서 드러나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확인하고 피하려고 노력한다면 의사소통의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각의 틀’이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 집단 사이에서는 의사소통의 실패나 오해가 빚어지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1998년, 최초의 행성 간 기후 관측 위성으로 알려진 ‘화성 기후 궤도선’이 발사됐다. 10개월 후 우주선은 화성 궤도에 진입한 후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의사소통의 실패 때문이었다. 우주선 설계와 제작을 담당한 록히드 마틴은 자세 제어 분사기의 추진력을 계산할 때 피트와 파운드 등 ‘관용단위계’를 사용했고, 미 항공우주국의 유도장치는 ‘미터법’을 써 계산했다.

애매한 말(모호성)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영어권 사람이 “혹시 몇 시인지 아세요”라고 묻는다면 지금 몇 시인지 알려달라는 정중한 방식의 간접질문이다. 하지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영어권 사람들은 ‘네’ 또는 ‘아니오’로 답하기도 한다. 배우자가 “내가 설거지 했어”라고 한다면 “당신이 쓰레기 좀 갖다 버려”라는 요구일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과한 믿음도 소통을 방해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아는 정보가 상대방에게도 이미 있다고 가정해 버리는 ‘지식의 저주’라는 인지 편향을 갖고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손가락으로만 연주해도 상대방이 그 노래를 바로 맞출 것이라고 착각한다. 실험에서는 손가락 연주자는 51%가 맞출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맞춘 사람은 2.5%에 불과했다. 자기 자신의 관점이나 견해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자기중심적 편향’은 자신의 의견과 가치관에 실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 ‘허위 합의 효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내가 아는 지식을 타인도 알고 있을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면 소통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비꼬는 표현이나 농담을 할 때도 듣는 사람이 내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섣불리 짐작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론 상식이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상식 때문에 오히려 읽고 듣는 과정에서 오류를 감지 못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세의 착각’이다. ‘모세는 방주에 동물을 종류별로 몇 마리씩 태웠을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자신 있게 “두 마리”라고 답한다. 하지만 성경 ‘창세기’에서 방주를 만들어 홍수를 피한 건 모세가 아니라 노아다.

말을 잘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지각의 문제는 인간의 귀를 통해 들어오는 음향신호가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같은 소리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몬더그린 현상’이란 게 있다. 미국 작가 실비아 라이트는 어린 시절 엄마가 잠자리에서 읽어주던 스코틀랜드 민요 ‘머리 백작’을 좋아했다. “그들은 머리 백작을 칼로 베고/잔디밭에 눕혔다네(laid him on the green)”로 시작된다. 라이트는 “레이드 온 더 그린”으로 “레이디 몬더그린’을 잘못 들었고, 머리 백작과 몬더그린 부인이 함께 죽는 장면으로 상상했다고 한다. 잘못 알아듣는다면 의사소통은 길을 잃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낯선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것으로 바꿔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우리의 의사소통 능력이 한 가지 방해 요소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투 스트라이크로 아웃되는 게임’과도 같다. 시끄러운 카페에서 대화한다면 이미 원스트라이크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투스트라이크로 아웃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혼란과 오해 속에 의사소통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저자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원스트라이크가 이미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보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끄러운 레스토랑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부모님과 식사 중이라면 복잡한 금융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소셜 미디어 게시글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메일에 비꼬는 말이나 유머러스한 표현을 쓰고 싶다면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를 비롯해 우리의 비언어적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약간의 양념을 가미해야 한다.”

⊙ 세·줄·평 ★ ★ ★
·소통에 실패하는 이유는 참으로 많다
·생생한 사례와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오해의 이유를 알면 소통에 성공할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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