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전쟁통 이스라엘보다 못한 韓 주식이라니

고세욱 2024. 10. 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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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삼성전자 실적에 역대급 관심 3개월새 주가 30% 폭락 여파
국내 대표 기업들 실적, 주가 비상등이 켜진 지 오래다
전쟁 중인 나라에도 뒤처지는 주가는 병약한 경제의 거울

지난 8일 오전 1400만 주식투자자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장이 열리기 전부터 휴대폰 속보를 기다렸다. 특히 425만명의 주주들은 입이 바싹 말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린 뒤 알림 소리가 났다. 주변에서 외마디가 간간이 들렸다. 휴대폰을 열었다. 425만명 중 한 명인 내 입에서도 무심코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속보-삼성전자 어닝 쇼크… 3분기 영업익 9조.’

동학개미들이 한날한시 한 종목의 실적 소식에 이토록 이목을 집중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비주주들은 “정말 실적이 안 좋나” 하는 호기심에, 주주들은 “전처럼 비관 전망이 틀렸으면”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지켜봤다. 삼성전자 3분기 실적 발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비정상적 관심은 한국 대표기업의 비정상적 추락에 기인한다. 3개월 전 8만7800원의 연고점(7월 9일, 종가)을 찍은 뒤 많은 삼전 주주들은 ‘10만 전자’를 떠올렸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은 끝날 거로 봤다. 그런데 8월 초 미국 경기침체 우려 때 흔들리더니 지난달 모건스탠리(‘반도체 겨울’), 맥쿼리(‘병약한 반도체 거인’) 두 외국 투자은행 보고서에 빈사 상태가 됐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퍼지자 다들 실제 모습(실적)이 궁금해졌다. 외국인들은 9월 3일부터 지난 10일까지 22거래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삼성전자 주식(10조원어치)을 팔아치웠다. 3개월 새 주가 하락폭만 32%다. 10만 전자의 꿈은 5만 전자의 악몽(10일 종가)으로 바뀌었다. 잡주도 아닌 시총 1위의 모습이다.

많은 이들이 삼성전자 문제점을 지적한다. 미래 산업을 이끌 인공지능(AI) 대비를 등한시했고(통찰 부족), 신산업에 대한 도전정신이 떨어졌으며(혁신 부족), 위기 돌파에 소극적이다(기업가 정신 부족). 그런데 이게 삼성전자에만 해당되는 걸까. 1등 기업이라 도드라져 보였을 뿐 한국 기업들 아니 우리 경제 전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1분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부동의 1위 한국의 점유율은 49.0%로 중국(49.7%)에 처음 역전당했다. OLED는 액정표시장치(LCD)보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해 한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했었다. 지난해 1분기 한국 점유율(62.3%)은 중국(36.6%)과 두 배 격차가 났는데 1년 만에 판이 뒤집혔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초격차 코리아란 말이 무색해졌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중국에 법인을 둔 국내외 기업인 30명을 조사했는데 “중국이 반도체를 빼곤 한국을 다 따라잡았거나 추월했다”라는 게 공통된 목소리였다고 한다. 삼성전자 쇼크에 묻혀서 그렇지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K-배터리 선두주자 LG에너지솔루션과 대표 IT기업 LG전자 영업이익도 전분기 대비 각각 38.7%, 20.9%나 감소했다.

증시는 경제의 거울이다. 올해 들어 지난 4일 기준 주요국 지수 중 코스닥(-11.2%)은 전쟁 중인 러시아 RTS(-14.8%) 다음인 세계 꼴찌 수준이다. 코스피지수는 -3.2%로 코스닥 바로 앞이다. 미국 나스닥(20.5%), 일본 닛케이(15.4%)와는 비교하는 게 무리다.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전쟁에 여념 없는 이스라엘 지수(TA35)도 올 들어 12.6% 올랐다. 한국 주식시장은 개미들에겐 어떤 곳보다 참혹한, 그것도 패배만 맛본 전쟁터다. 삼성전자 살리기에 머물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심각성을 정부와 정치권이 인식 못 한다는 점이다. 민생 법안의 먼지는 쌓여만 가고 투자 활성화를 위한 재정, 기반시설 지원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의 무관심에 멈춰있다시피 한다. 심지어 자본시장 투자 심리에 영향을 주는 금융투자소득세 문제 해결도 지지부진하다. 석 달 전 칼럼(‘왕개미 이재명 전 대표의 금투세 간보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었다. 다수당 대표로서 금투세의 시행이든 폐지·유예든 속히 선택하는 게 주식시장 불확실성을 없애는 일이라 했다. 그런데 시행일(내년 1월 1일)이 코앞인데 여전히 간보는 중이다. 민생 경제에 관심 없다는 얘기다.

현재 세계에서 경제가 제일 좋다는 미국도, 주요 2개국(G2) 일원 중국도 친기업, 경제살리기를 위해 재정 지원, 금리 인하, 세제 혜택 등을 총동원한다. 심지어 무역전쟁도 불사한다. 이들보다 하나 나을 것 없는 한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전쟁국가보다 ‘병약한 주식시장·한국경제’란 오명만은 씻어야 할 것 아닌가. 경제가 주저앉는 판에 정쟁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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