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때 아빠가 준 참혹한 사진…한강 "5·18 소설 쓸 때 매일 울었다" [한강 노벨문학상]

홍지유, 조수진 2024. 10. 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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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30년 넘게 일관되게 다뤄온 주제는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비극이다. 그에게 2016년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안긴 대표작 『채식주의자』(2007)는 육식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잔인함과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장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의 상처를 다뤘다.

그가 '폭력'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70년 광주 출신인 한강은 13살에 아버지가 건넨 사진을 통해 그날의 참상을 봤고 훗날 "그 사진첩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회고한 바 있다. 참혹한 시신, 그 옆에 총상자를 위해 헌혈을 하려고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인간 안에 참혹한 폭력과 이타심이 모두 있다는 게 양립할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한강의 소설은 초기부터 깊이 있는 주제를 다뤘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서는 인간의 상처를 탐구하는 그의 문학적 세계를 세상에 선보였다. 첫 장편 『검은 사슴』은 한낮의 도심을 알몸으로 달리며 기억을 잃어버린 여성의 모습을, 두 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은 석고로 인체의 본을 떠내는 라이프캐스팅 작업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파헤쳤다.

네 번째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는 한 여성 화가의 의문스러운 죽음 이후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희랍어 시간』은 이혼 과정에서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이름을 세계 문학계에 알린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주부 영혜가 채식을 선언하며 가족과 충돌하는 이야기지만, 그 저변에는 욕망과 폭력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저자의 통찰이 있다. 아버지가 자신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집어 넣자 손목을 긋는 영혜와 그를 지켜보는 남편,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영혜의 몸을 탐하게 된 형부,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병원에 갇힌 영혜를 찾아간 언니 인혜를 통해 폭력과 욕망, 억압받는 인간의 내면 등을 다뤘다.

『채식주의자』는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소설", "아름다움과 공포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부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한강은 시상식 단상에 올라 "소설쓰기는 내게 질문의 한 방법이며 『채식주의자』를 통해 결사적으로 인류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한 여성을 그리려고 했다"는 소감을 남겼다.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2014)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스러진 열여섯살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뤘다. 출간 당시 한강은 여러 인터뷰에서 5·18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을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는 『소년이 온다』대해 "역사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문학적 작품"이라며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폭력과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림원은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한강의 문체에 "시적인 산문"이라는 평가를 붙였다.

2021년 펴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에서 출발한 작품. 주인공 경하와 그의 친구 인선, 인선의 어머니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시선으로 제주의 비극을 풀어낸다. 2023년 프랑스에서 『불가능한 작별』이란 제목으로 출간돼, 그 해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의 영예를 한강에게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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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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