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트랜스포머'가 꿈꾸는 평평한 사다리, 현실은…
불평등 만연한 현실에선 타개할 해답 없어
페인 교수, 현실적 대안 '상·하향 비교' 제안
영화 '트랜스포머 원'은 계급 사회를 다룬다. 주인공인 오라이온 팩스와 D-16의 직업은 광부.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변신 코그가 없는 하급 로봇인 까닭이다. 태생적으로 결핍이 있다고 교육받았다. 신분적 불평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다. 사이버트론 행성 지하 광산에서 죽어라 일한다.
지상에 잠들어 있던 알파 트라이온을 만난 뒤는 다르다. 조작된 사회 시스템을 인지하는 동시에 잠재된 변신 능력을 깨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뜨리고자 한다.
현실에서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경제·문화적 자원의 불평등을 체감하고 공감하는 데 그친다. 샘 프리드먼 런던정경대학 사회학 교수와 대니얼 로리슨 영국 사회학 저널 편집장은 변화를 가로막는 견고한 벽을 '계급 천장'이라고 일컫는다. 저서 '계급 천장'에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여러 문헌에서 도출되는 핵심 요점은 일반적으로 '능력'이라고 이해되는 요소가 커리어 성공의 유일한, 또는 심지어 주요한 결정 요인조차 아니라는 점이다. 거듭된 연구에서 여성과 인종 및 민족적 소수자는 설사 측정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백인 남성만큼 유능하고 재능 있고 열심히 일하더라도 여전히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두 저자가 영국에서 진행한 조사에서 여성과 다수 민족적 소수자 집단, 장애인은 모두 상위 직종에서 현저히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설사 같은 일을 하더라도 처우 등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 예는 2017년 BBC 연례 보고서. 이에 따르면 사내 고소득자의 3분의 2 이상은 남성이며, 최고 연봉을 받는 임원 일곱 명은 모두 남성이다.
보고서에는 비슷한 경력, 명성, 위상을 가진 스타들 간의 극명한 성별 임금 격차도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예컨대 스포츠 진행자 게리 리네커와 클레어 볼딩의 연봉 차이는 상당하다. 모두 오랫동안 사랑받은 BBC의 유명 인사지만 여성인 후자의 연봉은 전자의 10분의 1(약 30억 원)에 불과하다.
B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사회 전반에 심각한 계급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 두 저자는 각 계급 태생 집단별 상위 직종 종사자의 예상 연평균 소득을 비교·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엘리트 직종 종사자 가운데 노동 계급 출신은 특권적 배경을 가진 동료보다 연평균 6400파운드(약 1088만 원)를 적게 벌었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도 상위 중간 계급 출신은 노동 계급 출신보다 16% 더 많은 수입을 얻었다.
계급 태생을 세부적으로 비교한 자료에서 격차는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엘리트 직종에서 부모 모두 소득이 없는 불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부모가 의료, 법률, 공학 등 고위 경영직 및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연평균 소득이 1만 파운드(약 1700만 원) 이상 적었다. 프랑스와 호주 상황도 비슷했다. 전자에서는 특권층 출신 상위 직종 종사자의 평균 수입이 노동 계급 출신보다 약 5000유로(약 7200만 원·14%) 더 많았다. 후자도 약 8%의 격차를 보였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이들에게 알파 트라이온과 같은 길잡이는 없다.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정치인들부터 의견이 엇갈려서다. 보수주의자들은 대개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둔다. 하급 계층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의욕을 북돋는 장려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빈곤층은 좀 더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유인책에 반응한다. 하루하루가 위기인 사람에게는 단기적인 해결책이 더 잘 먹히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인책에 합리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근근이 버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런 이들에게 스스로 일어서라는 훈계는 공허한 울림일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소득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 같은 시스템적 요인을 문제시하면서도 개인의 경정(更正)이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곤 한다. 환경과 사회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시스템에 초점을 둔 추상적 설명이 좀 더 설득력을 얻으려면 개인이 일상적으로 내리는 구체적 결정에 시스템의 영향이 반영된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양측은 자멸적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은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결론짓기도 한다. 구제 불능이라고 단념해버리는 건 도의적 회피다. 사람의 행동으로 환경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행태나 다름없다. 이렇게 빈곤층을 악순환에 빠지게 하는 외면은 부유층에게 선순환을 일으킨다.
오라이온 팩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평평한 사회적 사다리를 꿈꾼다. 아래층을 올리고 위층을 내리려고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불평등 수위를 조절해 승자독식 체계를 타파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정도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물론 그 뒤에도 불평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경쟁의 결과로 어느 정도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런 시스템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 때문이다.
키스 페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상황에 맞는 상향 비교 또는 하향 비교를 추천한다. 저서 '부러진 사다리'에서 "그렇게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해놓으면 합리적 틀과 관점이 생겨 자신의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지만 훨씬 더 나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에 만족해도 괜찮을 듯싶지만, 큰 과제를 앞두고 있어서 최대한 근성을 짜내야 한다면 상향 비교에 돌입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도 방법이다. 살면서 중요한 문제들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면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좋다. 각 비교의 이점을 취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어떤 궤도를 타고 있는 확인할 수 있다."
비단 저소득층이나 중산층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최근 수십 년간 심화한 불평등은 분명 이들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불평등이 심해지면 순자산처럼 명확한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의 불이익이 생긴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컨대 범죄율은 높아지고, 스트레스성 질병은 증가한다. 정치적 양극화도 심해진다. 이런 문제들은 하나같이 모든 이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개인의 행복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족감을 느끼더라도 오래가기 어렵다. 불평등이 심한 환경이라면 더더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끈한 2차 계엄 부탁해요" 현수막 내건 교회, 내란죄로 고발당해 - 아시아경제
- "좋아해서 욕망 억제 못했다"…10대 성폭행한 교장 발언에 日 공분 - 아시아경제
- "새벽에 전여친 생각나" 이런 사람 많다더니…'카카오톡'이 공개한 검색어 1위 - 아시아경제
- '다이소가 아니다'…급부상한 '화장품 맛집', 3만개 팔린 뷰티템은? - 아시아경제
- "ADHD 약으로 버틴다" 연봉 2.9억 위기의 은행원들…탐욕 판치는 월가 - 아시아경제
- 이젠 어묵 국물도 따로 돈 받네…"1컵 당 100원·포장은 500원" - 아시아경제
- "1인분 손님 1000원 더 내라" 식당 안내문에 갑론을박 - 아시아경제
- 노상원 점집서 "군 배치 계획 메모" 수첩 확보…계엄 당일에도 2차 롯데리아 회동 - 아시아경제
- "배불리 먹고 후식까지 한번에 가능"…다시 전성기 맞은 뷔페·무한리필 - 아시아경제
- "꿈에서 가족들이 한복입고 축하해줘"…2억 당첨자의 사연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