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생활비 걱정 덜자 새 분야 취업 도전… 서울시 ‘디딤돌소득’ 효과
A씨(38)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근로소득 ‘0원’이 찍히는 달이 이어졌다. 프리랜서 통역사로 근무했는데, 국제사회 교류가 급감하며 일감이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친 50만원이 월 가구 수입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A씨는 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생계급여를 받지 못했다. A씨에겐 이 시기 서울시의 디딤돌소득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2022년 7월부터 월 100만원 가량을 지원받았고, 당장의 생활비와 어머니 병원비에 보태 썼다. 다소 여유가 생기자 불안정한 통역 일이 아닌 새로운 분야 취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
A씨는 지난 4월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정규직으로 해외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생계급여 같은 기존 소득 보장 정책은 근로 능력 여부를 보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지원금 수령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디딤돌소득은 서울시에서 실험하고 있는 새로운 소득 보장 정책으로, 오세훈 시장의 역점 사업이다. 중위소득의 85%인 기준액과 가구소득 간 차액을 저소득층에게 지급한다. 중위소득이 85% 이하면서 보유 재산이 3억2600만원 이하인 가구가 대상이다. 가령 중위소득을 3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85%인 255만원이 기준액이다. 소득이 155만원인 가구는 85% 기준액과 가구 소득의 차액 100만원(255만원-155만원)의 절반인 50만원을 디딤돌소득으로 지급받게 된다. 소득이 55만원인 가구는 차액 200만원의 절반 100만원을 지원받는다.
디딤돌소득은 기존 복지제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설계됐다. 보수 진영은 소득 보장 정책이 수급자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킨다고 우려해왔지만 디딤돌소득 사업은 그 반대의 결과를 내놓고 있다. 실제 수급자의 근로 조건이 좋아져 가구소득이 175만원이 되면 디딤돌소득 수급액은 줄어 40만원이 된다. 하지만 월 소득은 215만원(175만원+40만원)으로 늘어난다. 수급액은 다소 줄었지만 소득이 그만큼 늘어나는 상황은 오히려 근로 의욕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진보 진영은 현재 소득 보장 정책이 사각지대를 양산한다고 지적해왔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2% 이하 가구에만 지급돼 지원 범위가 협소하다. 재산을 소득 기준에 포함시켜 자산은 있으나 소득이 없는 빈곤층이 수급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디딤돌소득은 중위소득 85%를 기준으로 삼아 지원 범위를 넓혔다. 재산의 소득 환산을 없애고 근로 능력 검증과 부양가족 입증 절차도 삭제했다. 특히 소득이 늘어 중위소득 85% 구간을 넘더라도 당장 수급 자격을 잃지 않으며, 이후 갑작스럽게 소득이 줄어들면 다시 자동으로 지원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디딤돌소득 실험은 2년여를 맞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시는 지난 7일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4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을 열어 지난 7월 디딤돌소득 수급 가구를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앞서 시는 2022년 7월부터 중위소득 50% 이하인 1단계 지원 대상 가구를 선정해 지원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중위소득 50∼85%로 대상을 넓혀 2단계 가구를 선발해 지원했다. 이번 조사는 1553가구(1단계 477가구·2단계 1056가구)를 대상으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탈(脫)수급 가구 비율이다. 중위소득 85%를 넘어 더 이상 디딤돌소득을 받지 않아도 되는 가구가 1533가구 중 132가구(8.6%)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급여의 탈수급 비율(0.22%)을 39배 웃도는 결과다. 476가구(31.1%)는 근로소득도 늘었다.
오 시장은 “디딤돌소득은 소득 상승과 근로의욕 고취라는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효과가 입증됐다”며 “전국적으로 확산돼 전세계가 주목하는 K-복지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석해 디딤돌소득을 평가하기도 했다. 뤼카 샹셀 세계불평등연구소 공동소장은 “(디딤돌소득으로) 탈수급률을 높이고, 고용률을 높이면서도 저소득층에게 현금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결과를 봤다”고 말했다.
디딤돌소득의 경쟁 상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세우는 기본소득이다. 선별지원(디딤돌소득)과 보편지원(기본소득)이란 차이가 분명하다.
디딤돌소득은 재원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소득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있다. 디딤돌소득을 전국화하면 연간 약 3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소득엔 더 많은 돈이 든다. 한국 인구 약 5100만명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려면 연 185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국가 전체 예산(656조원) 4분의 1 수준이다.
기본소득의 긍정적 영향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파시 모이시오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원 연구교수는 디딤돌소득 포럼에서 “핀란드는 2017년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는데, 고용에 미친 영향이 미미해 전국민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1인당 매달 560유로(약 83만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수령자의 고용일수(1년간 78일)와 비교 집단의 고용일수(1년간 73일)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오 시장은 디딤돌소득의 전국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오 시장은 “처음 시행할 땐 (중위소득) 65%에서 시작해 조금씩 올리면서 최종 목표인 85%에 맞추면 감당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동성 김용헌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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