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어른의 일과 모임, 운사모

김남중 2024. 10. 10. 00:3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50대 중반이 되니까 은퇴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된다.

지난여름 2024 파리올림픽에서 활약한 펜싱 선수 오상욱과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이 중·고교 시절 운사모의 지원금을 받았고 그것이 큰 힘이 됐다고 밝히면서 이 모임이 알려졌다.

무엇보다 운사모가 나이 든 어른들 모임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운사모는 은퇴한 어른들의 모임이고, 대전지역 어른들의 모임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남중 국제부 선임기자


50대 중반이 되니까 은퇴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그쪽으로 향하는 경우도 잦다. 앞서 퇴직한 선배들을 만나면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질문도 많아진다. 대부분 그럭저럭 지낸다고, 은퇴 후에 뭐 특별한 게 있겠느냐는 듯이 얘기한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모델이나 힌트라고 할 만한 걸 발견하긴 어렵다.

은퇴 후의 삶이란 퇴직 후의 생계나 일과는 다른 것이다. 경제활동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되는지, 나이 든 어른으로서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직장과 조직에서 쓸모를 다한 후 여생의 보람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에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운사모’가 반가웠다. ‘운동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소박한 이름의 이 단체는 회원들이 한 달에 1만원씩 모아 형편이 어려운 스포츠 유망주를 지원하는 일을 15년간 해 왔다. 현재 회원은 370명 정도다. 지난여름 2024 파리올림픽에서 활약한 펜싱 선수 오상욱과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이 중·고교 시절 운사모의 지원금을 받았고 그것이 큰 힘이 됐다고 밝히면서 이 모임이 알려졌다. 금메달 세 개를 따고 스포츠 스타가 된 오상욱은 어리고 어렵던 시절 받은 운사모의 장학금을 ‘진짜 배고플 때 먹는 초코파이’에 비유하면서 “운사모 덕분에 배고프지 않게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운사모는 월 1만원 기부로 얼마나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기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한 이건표 운사모 회장은 돈을 좀 더 내겠다는 회원들도 있는데 모두 똑같이 1만원씩 내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일회성의 거액 기부가 주목받지만 작고 꾸준히 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기부 문화로 축적될 것이다. 주변을 보면 나이를 꽤 먹었어도 기부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국민들에 속하지만 기부에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운사모처럼 월 1만원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기부에 참여할 사람은 무척 많을 것이다. 좋은 기부 모델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운사모가 비인기 종목의 지방 중·고교 선수들을 지원해 온 점은 남다르게 보인다. 펜싱이나 높이뛰기, 카누 같은 종목은 탁월한 스타가 없는 한 주목받기 어렵다. 게다가 지방에서 운동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누가 관심을 줄까. 세상 어디에나 그런 분야가 있다. 그런 방치된 곳을 돌보는 시민들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무엇보다 운사모가 나이 든 어른들 모임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70대인 이 회장은 대전시교육청에서 소년체전 담당 장학사를 하다가 은퇴했다. 비인기 종목의 어린 선수들이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그만두는 걸 안타까워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모아 운사모를 시작했다고 한다. 운사모는 은퇴한 어른들의 모임이고, 대전지역 어른들의 모임이다.

운사모는 기부 모델이자 어른들의 삶의 모델, 사회를 바꾸는 모델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은퇴자들이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시간이 있고, 경제적 여유도 있다. 동창 모임이나 고향 모임, 직장 모임, 동호인 모임 등 각종 모임도 활발하다. 시장도, 정치도 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이 거대한 은퇴자 인구가 우리 사회 곳곳의 빈 틈을 메우고 어린 세대를 지원하는 일에 관심을 보여준다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당장 모임의 회비 중 일부만이라도 떼어서 ‘어른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김남중 국제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