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아무리 김건희 여사가 밉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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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탄핵 때 가짜뉴스 기억하나
김 여사 보도, 8년 전과 뭐 달라졌나
언론이 야당처럼 해선 정통성 상실
」
#1 2016년 이 무렵으로 기억한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짜뉴스가 넘쳐나는데 언론계 종사자로서 책임을 못 느끼냐."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가짜뉴스란 말은 적절치 않고, 있지도 않다. 잘못된 보도는 오보일 뿐이다." 없던 일을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만들어내면 가짜뉴스이지만, 적어도 정통 언론에서 그런 기자와 보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근데 웬걸, 얼마 안 지나 한국을 뒤흔들어 놓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여러 보도들은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이했는지 깨우치게 했다. 몇 가지만 되돌아본다. ①'세월호 7시간' 의혹 관련 보도. 언론들은 "향정신성 약품을 맞았다"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 "밀회를 즐겼다" "올림머리 하느라 90분을 날렸다"고 보도했다. 좌파 언론과 종편은 이를 연일 확대 재생산했다. '나꼼수' 출신 주진우 기자는 "비아그라 나오고 마약 성분 나오고, 앞으로 더 나올 것이거든요. 아, 섹스와 관련된 테이프가 나올 겁니다"라고 했다. '세월호 7시간'은 그래서 탄핵안에 포함됐다. 특검은 한참 후에야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정보도를 낸 곳? 물론 없었다.
②박 전 대통령이 2014년 신년회견에서 쓴 '통일 대박'이란 표현이 최순실 아이디어였다고 대다수 언론이 보도했다. 이 기사는 최씨가 대북 문제까지 개입했다는 식으로 전파됐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아바타'로 각인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창민 중앙대 명예교수의 책 『통일은 대박이다』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③"박근혜 옷값을 최순실이 냈고, 최순실이 숨겨둔 재산만 10조원이다." 이 보도는 두 사람이 '경제공동체'라는 프레임을 굳히는 결정타였다. 하지만 수사 결과 박 대통령은 옷값을 현금으로 제대로 지급했다. 최씨 재산은 특검이 탈탈 털었지만 228억원. 숨겨둔 돈 따위는 없었다. 자, 이 뉴스들이 가짜뉴스 아닌 단순 오보였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난 그럴 자신이 없다. 정치검찰의 언론 플레이도 일조했겠지만, 모두 뒤죽박죽됐을 것이다.
#2 한국 기자들은 1을 취재해 100을 쓰고, 일본 기자들은 100을 취재한 뒤 기사를 결국 1도 안 쓴다는 말이 있다. 어디서 말 한마디 듣고 그게 팩트인 양 '단독'이란 타이틀까지 달고 대대적 보도를 하는 한국 언론, 그리고 복수의 소스로부터의 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 팩트가 나오면 기사화 자체를 포기하고 마는 일본 언론의 대조적 행태를 우스개처럼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아프다.
요즘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한마디 한마디에 춤추는 우리 언론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자, 생각해 보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이 "공을 많이 세우셨으니 대통령을, 여사를 이름 팔고 다녀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직원의 이름과 직급은 전혀 기억 못 한다고 했다. 명씨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런 허튼소리를 누가 믿을까. 또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될 텐테…"라고 했다 하루 만에 "농담 삼아 한 이야기"란다. 이런 명씨의 선택적 과대망상과 협박에 언론은 앞으로도 지면과 마이크를 마냥 빌려줘야 하나. 8년 전과 크게 다름이 없다. 뚜렷한 범법, 위법 사실 없이 "뭐 하나 걸리겠지"라며 칼만 마구 허공에 휘두르는 양상이다. 계속해서 "나, 너 미워"만 외치는 꼴이다. 방향을 정해 놓고 엮고 짜맞춘다. 이래선 곤란하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건 당연하다. 아니 의무다. 하지만 권력을 끌어내리기 위한 보도는 위험하다. 둘이 뒤죽박죽 섞이는 순간 정통성은 사라진다. '김건희 심판본부'라는 조직까지 만들며 윤석열-김건희 끌어내리기에 목숨을 건 야당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 막말로 윤 대통령을 탄핵하더라도, 김 여사를 구속하게 하더라도 그건 제대로 된 팩트에 기인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고, 제대로 된 나라다. 김 여사의 자성과는 별개다.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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