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때부터 시작한 일기 쓰기

김삼웅 2024. 10. 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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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26] 그는 평생 일기를 쓰고 곁에 난과 매화를 두었다

[김삼웅 기자]

▲ 안채 이병기 선생이 기거했던 방
ⓒ 오명관
보통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는 매일 일기를 쓰기란 쉽지 않다. 어떤 계기로 쓰기 시작했다가도 작심삼일로 그치기도 한다. 그는 19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계속 써오다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된 1942년 1월 초부터 1943년 9월 18일까지는 쓰지 못하고, 석방되어서 다시 시작하였다.

가람의 일기는 30여 권 노트로 되어 있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1909년 4월 13일부터 10년 간을 순하는데로 쓰다가 3.1운동 후의 1919년 9월 8일부터는 순국문체로, 1920년대의 후반기 부터는 국·한문을 섞어 쓴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매일 쓴 일기의 양이 많은 날은 200자 원고지 40~50여의 분량의 일기를 썼다. 만년 와병 중 그 불편한 몸으로도 일기는 계속하여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무렵의 것은 한두 줄로 썼다. (주석 1)

일제강점기 민족진영의 인사들은 불시에 검속을 당하기 때문에 꼬투리 잡힐 것은 쓰지 않고 일상사나 가족사 관련 내용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가람은 이런 상황에서도 시국문제를 임의로 썼다.

1920년 10월 31일, 일기 쓰기 시작한 두 번째 날의 일기다.

구름이 끼었다. 오늘은 천장절이다. 순사가 다니며 집집에 붉은 등소기를 적간해 보여 아니단 집사람은 7일 구류 시킨다더라. 그 바람에 작년 오늘에는 아니 달았던 집들이 다 달았더라. 붉은 배쪽이 여기저기 공중에서 번들인다.

과연 덕부노화(德富盧花)의 말 같이 충군애국은 온통 공중에 있더라. 수당을 만났다. 송진우군·현상윤군 감옥에서 나왔다기에 가 보았다. 심판은 그다지 변하지 아니하였더라. 송경석군을 봤다. 취동을 보다. (주석 2)
▲ 모정과 연못 모정 앞에 조그만한 연못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 오명관
1922년 3월 1일의 일기다.

밝다·탑골공원을 지나다가 시조를 지었노라.

차디찬 겨울날 어느덧 다 지나고
따뜻한 봄볕이 동산에 비치오니
새들도 때를 만난 듯 지저귀며 반기더라

동산에 꽃이 피어 벌나비 날아든다
덤불 속 매화야 뉘라서 알야마는
드러난 도화이화(挑花李花)만 서로 보고 세우더라.
구렁에 얼음 녹고 메위에 아지랑이 끼는데
아낙은 나물 캐고 사내는 밭을 간다
진실로 제 벌이 제 삶이 죄질 것 없어라. (주석 3)

1923년 3월 1일의 일기다.

맑다, 좀 춥기도 하다. 이날은 정월 열나흘인가. 아니 3월 1일은 곧 정월 열나흘을 올해 말이다. 3월 1일, 3월 1일, 나는 무슨 일을 하였었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장차 무슨 일을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제목만 두고 그렁저렁 한 평생 지날 뿐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내 문제가 급하고 크다. 나는 내 마음 하나를 추스릴 줄 모른다. 하물며 다른 이에게 미치랴. 홍태식씨가 홍명희씨의 명함을 가지고 온다. 매우 몸이 튼튼하게 보인다. 호영강습회에서 장정 하나를 얻어 가겠다. 지시해보자. (주석 4)

1929년 12월 9일의 일기다.

학교에서 3, 4, 5학년 일동이 광주사건으로 말미암아 맹휴를 한 것 순사 포위, 형사 간섭에 대개 진정되었다. 들으면 경신에서는 300여 명이 보성고보로 가서 합동하여 다시 남대문 상업학교로 와 합동하여 창경원 앞으로 나오니 저지되고 다시 창경원 담 뒤로 돌아 최운정으로 빠져 중앙과 합동하여 쏟아져 효자동으로 나오다 검거되어 경찰교습생, 소방대까지 출동하여 사뭇 자동차로 실어갔다 한다. (주석 5)

1935년 5월 16일의 일기다.

흐리다 맑다. 매화 한 주에는 싹이 트지 않는다. 사다가 심은 지가 벌써 한 달 20일.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끝만 좀 마르고 싱싱하다. 잡아매었던 것을 다 풀어주었다. (주석 6)

해방 후인 1945년 9월 22일 일기다.

오전 10시 연극장에서 〈과거의 우리문화〉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위아래층에 가득히 모인 청중이 퍽 긴장하여 듣는다. 한 시간 반을 하였다. 이렇게 정숙히 듣기는 전주에서 처음 보는 바라 한다.……전주 강습은 다 마쳤다. 6일 동안에 한글 쓰는 법을 거의 다 알렸다. 한 사람도 조는 이 없이 끝끝내 들었다. 매우 기쁜 일이다.

그는 평생 일기를 쓰고 곁에 난과 매화를 두었다. 말년에는 난초의 재배법을 터득했다.

1. 난의 종류는 많으나 관음소심란과 건란이 가장 좋다.
2. 분은 자도(紫陶)로, 높이는 높고, 넓이는 좁은 놈이 좋다.
3. 난을 심을 때, 그 썩은 뿌리는 다 끊어내고 그 뿌리와 뿌리 사이에 모래를 끼게 하여 분 밑에는 적분파편(赤盆破片:아무쪼록 등골 등골하게 만들어)을 깔고(이는 수기(水氣)를 흡수), 그 위에는 좀 가는 모래를 깔고, 그리고 난근(蘭根)을 그 위에 놓고, 모래를 넣어 그 틈을 채우고 물을 주어 가라앉힐 일이다.
4. 물은 4~5일에 한 번씩 줄 일. 자주 너무 주면 뿌리가 썩는다.
5. 항상 음지에 두고 혹은 발로 가려 양지에 두기도 한다. 일광은 하루에 한 시간 가량 쪼일 일이다.
6. 거름은 차(茶) 찌꺼기 같은 것을 쓴다.
7. 처음 순이 나올 때 물을 조심하여 줄 일. 순이나 잎 속에 물이 잠겨 부패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주석 7)

주석
1> 최승범, 앞의 책, 94쪽.
2> <일기초(抄)>, <가람문선>, 101쪽.
3> 앞의 책, 106쪽.
4> 앞의 책, 111쪽.
5> 앞의 책,
6> 앞의 책, 131쪽.
7> 최승범, 앞의 책, 51~52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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