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의 변심…총리 되자마자 던진 승부수, '7조 해산' 뭐길래 [줌인도쿄]

오누키 도모코 2024. 10. 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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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9일 중의원 해산을 단행함에 따라 일본이 총선 정국에 돌입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 국회 해산은 총리가 가진 가장 큰 권력으로, ‘전가의 보도’로 여겨진다. 동시에 잘 활용하면 총리와 집권당의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정권을 내줄 수 있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첫 연설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총리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일본 헌법엔 국회 해산에 관해 두 개의 규정이 있다. 하나는 제7조 ‘천황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하여, 국사에 관한 행위를 향한다’는 것이다. 국사 행위 중 하나가 중의원 해산인데, 실제 내각의 수장인 총리가 해산을 결정하는 구조다. 그래서 해산권은 ‘총리의 전권사항’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제69조로, 중의원에서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10일 이내에 해산 혹은 내각 총사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1947년 현행 헌법이 시행된 후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되면서 해산한 건 네 번뿐이다.

나머지 국회 해산 모두 총리의 판단에 의한 ‘7조 해산’이다. 그래서 야당이나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 7조 해산을 두고 총리가 마음대로 해산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해왔다.

집권과 동시에 해산을 결정한 이시바 총리도 원래 7조 해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지난 6월 자신의 블로그에서 “중의원 해산은 내각과 중의원 간의 입장 차이가 명확해진 경우에 한해, 내각이 국민의 의사를 묻기 위해 해야 한다”고 썼다.

이어 “7조를 근거로 ‘지금 해산하면 이길 수 있다’고 중의원을 해산 하는건 국회를 ‘국권의 최고기관’으로 규정한 헌법 41조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소신'과 달리 이시바도 총리가 되자 7조 해산을 택했다. 이에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는 자난 7일 국회에서 “명백한 7조 해산 아니냐. 이해할 수 없다”며 이시바의 ‘변심’을 비판했다.

2005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 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중의원 해산 단행 방침을 밝히고 있다.사진 지지통신


‘아소의 트라우마’

이런 논란에도 총리는 왜 해산을 하고 싶어하는걸까. 본인이 원하는 때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치를 수 있는 해산권이 총리가 가지는 권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그 전에 총리가 유·불리를 따져 원하는 시점에 해산해 유권자로부터 신임을 받는다면 정권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해산권을 적절히 사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다. 2005년 그의 숙원이었던 우정사업 민영화 추진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해산을 선택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국회 표결 전부터 “부결되면 해산하고 국민에게 묻겠다”고 밝혔었지만, 정계에선 실제로 해산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소신에 따라 국회를 해산한 고이즈미에 대해 국민 여론은 우호적이었고, 선거 결과 자민당은 전체 의석수의 약 60%에 달하는 296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뒀다.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고이즈미 전 총리는 국회에 재차 해당 법안을 제출했고 결국 통과됐다.

지난 4일 국회에 참석하는 아소 다로 전 총리(왼쪽).AP=연합뉴스


반면 잘못 판단하면 되레 많은 의석을 잃을 수 있다는 '리스크'도 있다. 2008년 취임한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참의원에선 야당인 민주당이 자민당보다 많은 의석을 가진 제1당이었다. 전임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는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는 등 정권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퇴진했다.

그 후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아소가 ‘선거의 얼굴’로 기대를 모으면서 총리에 취임했다. 일반적으로 정권 지지율은 총리 취임 초기가 높고, 이후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당시 정계에선 취임 직후 해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그러나 아소는 ‘리먼 쇼크(미국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신청)’에 의한 경제 위기 대응이 우선이라며 조기 해산을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자 2009년 중의원 임기 만료 직전에 쫓기듯 해산했다. 해산한 날 그는 자민당 의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모두 (당선돼 국회로)돌아와 달라”고 호소했지만, 자민당은 선거에서 참패했고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겼다. 자민당 내에선 이를 '아소의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이시바의 승부수, 통할까?

이시바 총리는 아소 정권 당시 농림수산상이었다. 아소가 임명한 장관이었음에도 그는 아소에게 “당신으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이시바 총리 역시 ‘선거의 얼굴’로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밝힌 소신을 뒤집으면서도 취임하자마자 7조 해산을 단행한 건 ‘아소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시바 정권의 지지율은 출범 직후인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안밖에 그치고 있다. 아소 전 총리의 출범 직후보다 낮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위기감을 느낀 이시바 총리는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된 의원 등 총 12명을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 7조 해산, 조기 총선이란 이시바의 승부수에 일본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도쿄=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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