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연애소설' 어떻게 여기서…바닷길 열리는 '소야도' 비밀

2024. 10.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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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 〈18〉 인천 소야도


인천 소야도 간뎃섬과 물푸레섬 사이에서 본 풍경이 그림 한 폭 같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누군가 가꿔놓은 연못처럼 보인다.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한 소야도는 덕적도 남동쪽에 바투 붙어 있다. 덕적도·굴업도 등 주변 섬의 명성에 가려 존재감이 없는 편이다. 하나 소야도는 걷기여행자에게 천국 같은 섬이다. 면적이 여의도(2.9㎢) 보다 조금 큰 3.03㎢인데, 포장도로는 불과 4㎞ 정도만 나 있다. 대신 걷기 좋은 숲길이 섬 구석구석 주요 명소를 이어준다. 섬 곳곳에서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장관도 볼 수 있다. 조각품 같은 바위섬도 많다. 아담한 섬인데 풍경만큼은 소박하지 않다.

물때 맞춰 소야 9경 둘러보기


“내일은 배가 안 떠요. 오늘 오후에 나오셔야 해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매표소 직원의 말에 머릿속이 뒤죽박죽됐다. 소야도 때뿌루해변에서 여유롭게 캠핑하려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오전에 들어가 오후에 나와야 하니 걸음이 바쁘다.
소야도를 알차게 둘러보려면 두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물 때 확인. 국립해양조사원 웹사이트에서 9월 30일 바다 갈라짐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7시 33분~12시 5분이었다. 다음은 코스 선택. 소야도 트레킹은 섬 구석구석 흩어진 ‘소야 9경’을 연결해 짜는 게 좋다. 섬 토박이로 중학교 교장과 마을 이장을 지낸 김태흥(79) 씨가 소야 9경을 정하고, 숲길을 정비했다. 김 씨의 설명이다.
소야도 토박이로 소야 9경을 정하고 산길을 정비하는 등 소야도를 널리 알리는 데 공헌한 김태흥 씨.
“주변에 큰 섬이 많아 그런지 사람들이 소야도에 안 와요. 제 고향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9경을 만들었지요.”
인천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1시간 10분 만에 덕적도에 닿았다. 배에서 나오자마자 소야도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덕적소야교를 건너, 소야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큰말에 정차했다.
물이 빠지면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간뎃섬과 물푸레섬. 사진 가운데 검은 바위들은 마치 누군가 규칙적으로 뿌려놓은 것 같다. 왼쪽 간뎃섬에 백사장처럼 하얀 건 굴 껍데기다.
마을에서 가까운 갓섬부터 찾았다. 갓섬 뒤편으로 보이는 간뎃섬과 물푸레섬이 손에 손을 맞잡은 사람처럼 이어져 있었다. 간조 때만 세 섬을 잇는 1.3㎞ 바닷길이 열린다. 간뎃섬 가는 길에 제법 큰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데, 누가 일부러 줄 맞춰 세워 놓은 듯하다. 간뎃섬과 물푸레섬 중간에는 바닷물이 고여 잔잔한 연못을 이뤘다. 물 안에 수석이 가득하고, 해초가 해파리처럼 꼬물거린다. 누구의 작품이기에 이렇게 아름다울까.

호랑이, 낙지 새겨진 바위


갓섬으로 돌아와 5경 호랑이바위를 구경했다. 바위에 금빛으로 돋을새김한 듯한 무늬가 선명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낳는 모습 또는 호랑이 두 마리가 교미하는 장면이라고도 한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만지면 임신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갓섬에 있는 호랑이바위. 바위 표면에 금빛으로 호랑이 문양을 돋을새김한 것 같다. 호랑이바위는 소야 9경 중 5경이다.
갓섬을 나와 다시 큰말로 향한다. 해변을 따르면 정자가 나온다. 정자 뒤편으로 9경인 낙지바위가 보인다. 검은 바위에 반짝이는 하얀 무늬가 영락없이 낙지처럼 보인다. 해변 끝 지점에서 산으로 올라붙는다. 제법 널찍한 임도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짐대끝 가는 길에는 솔숲이 그윽하다. 짐대끝 근처에 있다는 3경 돌절구는 못 찾았다. 대신 등대를 보고, 1시간쯤 호젓한 숲길을 걸어 소야도 가장 남쪽인 막끝에 닿았다.
짐대끝 가는 길의 울창한 솔숲. 소야도는 울창한 원시림에 호젓한 숲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막끝의 삼형제바위는 소야 9경 중 8경이다. 썰물 때는 세 섬이 이어지며 웅장한 풍경을 연출한다.
막끝에도 멋진 바위가 많다. 전망대 정면에 작은 고래처럼 보이는 섬이 막끝딴섬이다. 전망대 뒤 해변 쪽에는 곰바위가 숨어 있다. 곰이 입을 쩍 벌린 채 고래를 잡아먹으려 하는 모습이 절묘했다. 막끝딴섬 오른쪽에 우뚝 솟은 바위 3개가 삼형제바위다. 이곳도 바다 갈라짐 명소로 ‘소야도 그랜드 캐니언’이라 부른다는데 이번에는 물에 잠겨 볼 수 없었다.

‘연애소설’ 배경이 된 해변


막끝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길은 굴곡이 없는 순둥이 같은 숲길이다. 큰말 갈림길을 지나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은은한 파도 소리 들으며 걷다 보면 때뿌루해변에 닿는다. 이름이 재미있는데 때뿌루, 떼뿌루, 떼뿌리. 표기가 오락가락한다. 섬사람들은 보리수나무 열매를 지칭하는 중국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하여튼 소야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캠핑족에게는 5성급 호텔로 통한다. 편의 시설을 잘 갖췄고, 시원한 솔숲 아래 텐트를 칠 수 있다.
소야도의 때뿌루해변은 캠핑족 사이에서 5성급 야영장으로 통한다.
때뿌루해변에 소야도공영버스가 선다. 오후 3시 막차를 타야 4시 인천 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시간이 남아 15분 거리의 죽노골해변을 찾았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연애소설’을 기억하시는지. 세 주인공(차태현, 손예진, 이은주)이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하며 추억을 남겼던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당시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소야도의 죽노골해변을 찾아온 게 용하다. 해변 앞 아담한 바위섬인 뒷목섬은 소야 2경이다. 이 섬까지도 물때에 따라 바다가 갈라진다.
때뿌루해변에 돌아오니 딱 3시다. 후다닥 뛰어 떠나려는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평화로운 소야도의 마을과 바다가 보인다. 비밀의 장소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 여행정보

차준홍 기자

소야도에 가려면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덕적도 가는 배를 탄다. 오전 8시 30분부터 하루 세 차례 뜬다. 1시간 10분 소요. 소야도 공영버스는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큰말에서 덕적도 선착장 가는 막차는 오후 3시(주중 기준) 출발한다. 큰말 쪽에만 펜션과 카페, 식당이 모여 있다. 트레킹을 한다면 도시락이나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가길 권한다.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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