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진수 (3) 한국전력 입사 목표로 삼척공전 입학… 첫 신앙생활 시작

김동규 2024. 10. 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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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는 키가 작은 편이었고 운동을 싫어하는 조용한 아이였다.

체육 시간이 되면 대부분 학생은 환호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 놀았고 누군가는 남아서 교실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이미 수업은 시작된 후였다.

나는 특수 직업학교인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삼척공전)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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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보다 기술 익히기 위해
5년제 특수직업학교 전기과 입학
교회 방문 후 하나님 궁금해져
신앙생활 가지며 대학 편입 결심
김진수(원 안) 긱섬 대표가 고교 시절 삼척제일교회 친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대표 제공


학창 시절 나는 키가 작은 편이었고 운동을 싫어하는 조용한 아이였다. 체육 시간이 되면 대부분 학생은 환호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 놀았고 누군가는 남아서 교실을 지켜야 했다. 나는 교실에 남는 것이 좋아 그 역할을 자처했다. 그렇기에 내가 반 학생들을 이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중학교 때 별명은 ‘보바대학총장’이었다. 보바란 바보를 거꾸로 한 말이다. 그랬다. 나는 바보대학총장이었다.

그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중3 때 과학 수업 시작 직전이었다. 한 친구가 다가와 말했다. “진수야, 담임선생님이 너를 찾는다. 어서 교무실로 가봐.” 나는 곧 수업이 시작되는 줄 알았음에도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교무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는 너 안 불렀는데”라고 답했다. 친구에게 속은 것을 뒤늦게 안 나는 서둘러 교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수업은 시작된 후였다. 과학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됐다. “너 왜 수업에 늦었어?”

과학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그 자리에서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보바대학총장’이 됐다. 그렇게 친구들 사이에서 생활하다 조용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특수 직업학교인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삼척공전)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가정환경이 어려워 대학 진학에 어려운 학생들이 이 학교에 많이 진학했다. 공업고등학교 3년 과정과 전문대 2년 과정을 통합한 5년제 학교였다. 기술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에서 설립한 특수학교로 등록금은 일반 고등학교보다 적었다. 나는 이 학교의 전기과에 입학했고 한국전력에 입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삼척공전 2학년 때 나는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기독교를 처음 접한 건 삼척공전 입학 첫해였다. 동아리 소개가 이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기독교 학생회였다.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 기독교 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교실을 방문해 참석을 권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그들이 올 시간에 맞춰 일부러 학교 옥상으로 피하곤 했다.

이듬해 여름 중학교 친구가 다니는 성당을 방문했는데 그때를 계기로 내 안에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계속 성당에 다니기엔 집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가 다니는,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나갔다. 그 친구는 모범적이며 성실했다. 나는 친구가 믿는 하나님이 궁금했다. 친구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삼척제일감리교회에서 첫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짖으면서 대입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편입의 꿈이 움트기 시작했다. 공전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편입의 뜻을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단호히 선을 그으셨다.

“안 된다. 우리 집 형편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들어간다 해도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거냐.”

“아버지, 첫 편입학금만 도와주세요. 이후부터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대학을 졸업할게요. 번데기 장사라도 할 자신 있어요.”

정리=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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