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스윙스테이트 2곳 강타한 허리케인… 美대선 영향 촉각

임성수 2024. 10. 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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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허리케인 ‘헐린’ 피해 지역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30일 조지아주 발도스타에서 허리케인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초박빙 판세… 경합주 대형 변수 겹쳐
‘공화 텃밭’ 투표 차질 땐 트럼프 불리
정부 대응 실망 주면 ‘심판’ 나설 수도
“날씨 조작이 원인” 음모론도 들끓어

초대형 허리케인 ‘헐린’이 미국 동남부를 할퀴고 간 뒤 피해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한 지난달 28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만난 한 인사는 “여기는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 서부 쪽은 허리케인 피해로 쑥대밭이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지 지역 방송에서는 온종일 허리케인 피해와 구조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대선 관련 뉴스보다 더 많은 양의 재난 특보가 중계됐다. 워싱턴에서는 대선이 가장 뜨거운 이슈지만, 허리케인이 강타한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선 눈앞에 닥친 재난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헐린이 지나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피해는 그대로 남아 있다. AP통신은 6일(현지시간) “헐린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대선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선 광범위한 폭풍 피해라는 더 즉각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두 주에는 선거인단이 각각 16명씩, 총 32명이 걸려 있다. 현재까지 여론조사상으로는 오차범위 내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앞서고 있지만,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곳이고, 해리스 입장에선 이 두 곳을 이기면 백악관 입성이 한결 더 수월해진다. 재난은 언제나 선거에 영향을 미쳐 왔다. 허리케인이 지역 표심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게 될지는 현재 미국 언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폴리티코는 “헐린은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의 거점을 강타했다”며 “미국 역사상 대선 전 6주 이내에 중요한 스윙스테이트 두 곳을 강타한 최초의 재앙적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헐린이 대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선 도로가 유실되고 마을이 사라지면서 유권자들의 투표를 어떻게 보장할지 카운티마다 고심하고 있다. 헐린 피해로 재난 지역으로 지정된 노스캐롤라이나 일부 지역에선 부재자 우편투표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조지아에서도 선거 당일 현장투표가 실시되는 투표소들이 정전과 인터넷 마비로 선거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더힐은 “헐린은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유권자와 선거관리 당국 모두에게 새로운 장애물을 던졌다. 가장 중요한 두 주에서 투표 절차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며 “일부 지역에선 사전투표와 우편투표가 복잡해지고 유권자들의 투표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곳의 유권자는 130만명(주 전체의 17%) 정도로 추산된다.

해당 지역에서 투표율이 떨어질 경우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피해가 큰 노스캐롤라이나 서부와 조지아 동부 모두 공화당의 전통적 텃밭이다.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노스캐롤라이나 서부의 25개 카운티는 2020년 대선 때 트럼프가 전체 표의 60% 이상을 가져가면서 승리했다. 트럼프는 조지아 동부에서도 5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번 재난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게도 위기가 될 수 있다. 정부 대응이 기민하지 못할 경우 유권자들이 ‘심판 투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벌써부터 교묘하게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연방재난관리청(FEMA) 예산 10억 달러를 불법 이민자 지원에 사용한 탓에 허리케인 피해를 본 지역을 도울 자금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를 직접 찾아 정부의 피해 지원이 부실하다고 질책했다.

각종 음모론도 들끓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에서 노스캐롤라이나를 위한 구호 물품이 연방항공청에 의해 차단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은 곧바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일부 극우 음모론자들은 정부가 날씨 통제 기술을 활용해 공화당 우세 지역에 허리케인이 지나가게 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퍼 날랐다. 공화당 강경파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이 소셜미디어에서 “그들은 날씨를 통제할 수 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동조하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2020년 대선 때 트럼프가 약 1.3% 포인트, 7만4000여표 차이로 신승했다. 조지아에선 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0.3% 포인트, 1만1000여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초박빙 승부가 펼쳐지는 경합주에서 허리케인 피해라는 대형 변수까지 겹치면서 대선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

연방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를 잇따라 방문했다. 바이든은 연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피해 지역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주장을 일일이 반박하는 중이다.

재난은 민심이 돌아설 수 있는 위기지만 재난 대응은 정부 역량을 보여줄 기회이기도 하다. 존 개스퍼 카네기멜런대 경제학과 교수는 더힐에 “재난이 닥치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로 재임 중인 공직자들이 투표장에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도 “재난은 정치인들에게 좋은 테스트가 될 수 있다. 재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투표장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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