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의 시선] 미국 경쟁력 원천은 노동 유연성
미국 대선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물가가 치솟아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를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상당수 미국인이 트럼프 주장에 동조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 경제는 주요 선진국 중 가장 잘 나가고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2.5% 성장한 데 이어 올해 2.6% 성장(IMF 전망)이 예상된다. 이는 한국(지난해 1.4%, 올해 2.5%), 일본(지난해 1.9%, 올해 0.7%), 독일(지난해 마이너스 0.2%, 올해 0.2%), 영국(지난해 0.1%, 올해 0.7%)을 뛰어넘은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4.1%(10월)이고, 코로나19 봉쇄 이후 치솟았던 물가는 지난 9월 2.5% 상승에 그쳤다. 미국의 성장·고용·물가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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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성장률 유럽 크게 앞서며
노동 유연한 미국식 모델 관심
한국, 노동규제 줄여 성장 일궈야
」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잘 나가는 비결로 창업·혁신을 장려하는 문화, 낮은 진입 장벽, 우수한 대학 교육, 이민자 유입과 함께 노동시장 유연성을 꼽는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동반한다는 걸 고려하면 미국의 혁신 문화와 노동 유연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미국은 기업이 필요에 따라 신속하게 인력을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다. 고용이 유연하다 보니 기업은 경제 불황 때에는 인력을 빠르게 줄이고, 회복기에는 신속히 고용을 늘릴 수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수시로 감원을 발표하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1월 1만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한편, 오픈AI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AI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메타도 지난해 2만 명을 감원하면서 AI 분야에 370억 달러를 투자했다. 구글은 지난해 주요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1만2000명을 감원하면서 AI 연구개발(R&D) 투자는 450억 달러로 늘렸다.
이는 한국·일본·유럽 기업들이 각종 고용 보호 규정에 막혀 제때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는 것과 대비된다. 노키아는 지난해 매출이 급감하자 구조조정에 나섰으나 독일·프랑스·핀란드의 노동 규제로 인해 2026년에나 구조조정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유럽의 소프트웨어 강자인 SAP는 각종 규제로 제때 자금을 투입하지 못하며 한해 AI 투자액이 5억 유로(약 7400억원)에 그친다. 이는 구글 등이 AI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는 걸 고려하면 미미한 액수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IT산업은 예측이 쉽지 않고 단절적이며 변화가 심하다. 유망 분야로 판단해 뛰어들었다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게 드러나면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노동 규제 등으로 성장성이 없는 분야에 발목이 잡힌다면 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이런 점에서 감원은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라 할 수 있다.
구조조정 비용의 차이는 첨단 기술 분야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유럽 IT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반면, 미국 IT 기업들은 빠르게 의사를 결정해 실행할 수 있다. 이런 비용의 차이는 수익성과 직결된다. 미국에서 이익이 나는 투자가 유럽에서는 손해가 날 수 있다. 컨설팅업체 매킨지 조사 결과 유럽 대기업들은 미국 대기업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떨어졌다.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인해 유럽의 구조조정 비용은 미국의 10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도 유럽 못지않게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한번 고용한 인원을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경직된 주 52시간제와 수도권 공장 입지 규제, 사회 전반의 반기업 정서 등으로 인해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그 결과가 투자 부진이다. 한국 기업들은 국내에는 투자하지 않고 해외로 나간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약정액이 총 215억 달러(약 28조6000억원)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는 한국의 현실을 대변한다.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성장 동력이 잦아들고 있다. 기업들이 국내보다 해외에 눈을 돌리며 국내에는 좋은 일자리가 줄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 취업 대신 자영업으로 몰리는 사람이 늘며 자영업 위기도 심해지고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가 절실하다. 해고 절차를 간소화하고 비정규직 규제를 완화하며 주 52시간제 개선이 필요하다. 노조의 반발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과제이다. 하지만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라면 유럽식 모델이 아닌 미국식 모델이 답이다.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은 한국의 성장 동력을 되살리기 위한 시발점이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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